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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아픈게 왜 엄마탓인가...!

2012. 2. 2. 16:45 | Posted by 조이~

세상에 얼마나 아까운 여성들이 많은지...;;

동네 친구가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들어한다. 애가 아픈걸 두고 왜 예방접종 제때 안해서 애를 아프게 하냐고, 아픈게 엄마탓이라고 볶았나보다. 
직장에서 조퇴해서 아픈 애 델꼬 병원왔다갔다 하다 집에서 재워두고 남편 때문에 서럽고 서운하고 우울해서 울면서 카톡으로 동네친구들에게 하소연ㅠㅠ

속시원히 남편한테 얘기하라고 하니, 한번 해봤는데 별소용이 없더란다. 
기껏 남편이 양보한 것이 점심도시락 싸달라고 안하기, 아기 어린이집 등원시키기, 저녁 만들어주는 메뉴대로 먹기. (양보라고 말하기도 뭐한;;;)

아픈게 왜 엄마탓인가. 애가 아플 동안, 직장다니느라 예방접종 시간 놓치는 동안 아빠는 뭘했나. 예방접종 시기를 체크하는건 왜 또 엄마일인가. 도대체 누가 정했나?!!

기본적으로 남자들이 육아와 가사를 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도와주는데 이만큼 했음 됐지'라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거다. 아픈 애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되니까, 애 먹일 밥을 준비해야하니까 자신의 시간을 내고 노동력을 내야한다는 사고 자체를 안하는거다. 
남자들이 육아와 가사가 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애가 아파서 밤새 칭얼거리고 뒤척여도 아빠들은 애 울음소리가 안들리는거고, 엄마들은 잠을 설치고 신경을 쏟느라 애가 낫고나면 엄마들이 몸살하는 거다. 

이 순간에도 이런 얘기를 다 하면 남편이 삐질거라고 남편 눈치보고 혼자 우울해하는 그 친구를 보면서 마음이 답답하고 쓰리다. 
세상에 아까운 이 많은 여성들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화나고 슬프다.

아이를 낳은지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나갔다.
아기 낳기 전까지는 낳자마자 출산일기를 꼭 써둬야지 결심했었는데,
낳고보니 내 몸 추스리고 애기 보기도 바빠, 한달이 훅~ 지나고나서야 그것도 며칠에 걸쳐 겨우 쓸 수 있었다.

40시간 진통 끝에 수술한 나의 출산일기를 시작한다.

7월 14일 새벽 5시 50분.
자다가 뭔가 느낌이 이상해 화장실로 갔다.
선홍색의 피...! 아, 이게 이슬이구나. 보면 딱 알 수 있을거라더니, 이게 이슬인가 싶다.
초음파 상으로 애기가 너무 커서 예정일 전인 7월 16일에 유도분만 날짜를 잡아놓고 있었던 상황. 자연진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왠지 전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서 도와주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슬이 비쳤으니 2~3일 내에 진통이 오겠지, 그야말로 출산이 임박했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약간은 긴장되고, 약간은 설렌다.
한 2주동안이나마 열심히 걸은 덕분인지, 아님 친구의 조언에 따라 전날 15층 계단을 3번씩 걸어올라간 덕이었는지는 몰라도 이슬이 비치고 그날 가진통도 한번씩 왔다. 가진통이 와도 진통이 더 빨리 오라고 열심히 걸었다.
이제 언제 출산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퍼붓는 소나기를 뚫고 점심은 삼겹살로, 저녁은 보쌈으로 에너지 비축!!

7월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진통이 시작되었다.
5분 간격 진통이 오면 병원으로 오라고 했는데... 아직 진통은 10~15분 간격이고, 아프긴 하지만 아직은 참을만 하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진통간격이 줄어들겠지. 진통이 올때마다 적어놓고 시간간격을 체크한다.
참을만하다고 해도 진통은 진통인지라 한숨도 자지 못하고 날밤을 샜다. 새벽 무렵에는 8분 정도까지 간격이 줄어들었는데, 아침이 되니 다시 10분 간격이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진통간격은 그대로지만, 기력이 점점 떨어진다.

7월 15일 오전 11시 30분, 결국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내진을 해보더니 자궁문이 1.5cm 정도 열렸단다. 초음파상 추정 몸무게는 4.1kg!!
다음날 유도분만을 잡아놨으니 일단 자연진통 간격이 줄어들기를 기다려보자고 한다. 집에 가서 기다려도 되고 입원해서 기다려도 되는데, 기력이 딸리고 힘드니 입원해서 기다리는게 낫지 않겠냐고 권한다. 집에 가도 답이 없어 입원했다. 분만실 옆 대기실(?)로 가서 태동기를 달고 간격을 체크했다. 간격은 그대로 10분을 유지. 더 줄어들지 않기에 입원실로 직행했다.
입원실에서도 진통간격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된다. 강도도 여전히 참을만하지만 아프다. 편히 누워있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허리와 배로 진통이 그대로 온다. 그렇게 15일 밤도 입원실 침대 위에 앉아서 그대로 지샜다. 진통 간격 사이사이 약간씩 졸은 게 전부.

10분 간격 진통만 무려 34시간을 하고 맞이한 7월 16일.
새벽 0시부터 금식을 하고 오전 8시부터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다.
진통이 점점 심해지고 간격도 줄어든다. 분만실 간호사는 간격에 비해 강도가 세고 한번 진통이 올 때 오래 간다고 얘기해줬다. 오전9시가 넘어 회진 온 주치의는 인사하는 나를 보더니 아직 덜 아픈가보다고 하면서 더 아파야 낳겠단다. 으~~ 난 이미 많이 힘든데...!!!

시간이 갈수록 진통이 심해지더니 갑자기 아래에서 물이 터지는 느낌이 나면서 콸콸 쏟아진다. 양수가 터졌다. 그리고나선 그야말로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진통.
태동기의 진통강도가 100을 가리킬 때마다 양수가 주룩주룩 나온다.
하지만 내진할 때마다 자궁문은 2cm 이상 잘 열리지가 않는다.
친언니도 조카 낳을 때 진통은 진통대로 하고 자궁문이 안열려 결국 수술했었던지라, 친정에선 언니와 엄마가 번갈아가며 전화를 해서 그냥 바로 수술하라고 난리다.
진통이 심해지면서 그냥 수술한다고 할까 싶은 유혹을 견뎌내는 것도 무지 힘들었다. 친정에선 분만실 밖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수술하라고 얘기하고, 어떻게 할지 묻는 남편에게, 일단 12시쯤으로 되어 있는 가족면회시간까지 최대한 견뎌보겠다며 버텨보기로 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분만실 간호사 한명이 커다란 짐볼 같은 걸 등 뒤에 대줬다. 아픈건 여전하지만 허리랑 척추를 받쳐줘서 그런지 그냥 누워있을 때보단 낫다.

정오가 가까워오면서 지옥이 시작됐다.
진통 사이 안아픈 시간이란 느껴지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짐승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소리지를 기운조차 없어 신음소리와 함께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까지 열심히 하던 심호흡도 더 이상 쉽지가 않았다. 숨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세상에 이런 고통이 있구나... 싶던 순간들.
이런 고통도 견디는데 뭔들 못하겠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이 그 고통 속에서 나를 견디게 했나... 참 놀랍기도 하다.

이따금씩 내진을 하던 간호사가 자궁문 열리는 걸 돕겠다고 마사지를 했다. 말이 마사지지, 한마디로 손을 넣어 쑤셔댔다. 그래도 좋다. 자궁문만 열린다면...!!
그렇게 낮 1시30분이 되었다. 3cm가 조금 넘게 열렸다는 말과 함께 가족분만실로 옮겨주겠단다.
아...! 드디어 가족분만실이다!
이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고 이제 자연분만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파도 희망이 생겼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남편과 드디어 상봉했다.
진통이 정점에 이르고 있던 나는 남편을 만남 안도감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어찌할바 몰라하며 계속 주물러줬다.

4cm가 열려야 무통을 주는데, 내가 너무 아파하니까 무통주사를 주겠단다.
잘 구부려지지도 않는 몸을 무통 한 번 맞아보겠다고 있는 힘껏 구부렸다.
그리고 맞이한 무통천국의 세계~!!!
무통주사를 발명한 사람은 노벨평화상 감이라더니, 내가 줄 수 있는 상이라면 백만개는 주고 싶다. 진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순식간에 지옥에서 구출된 느낌이랄까. 그동안은 그야말로 낮은 신음소리와 고통스런 흐느낌만 하다가 이제야 남편과 대화가 가능해졌다. 웃어가며 남편과 무통을 찬양하기 바빴다.
무통주사는 한 2시간쯤 효력이 가니까 그 사이에 낳아야 된단다.
내진하던 간호사가 자궁문이 더 안열리긴 했지만 힘주는 연습을 해보잔다. 똥누듯이 항문에 힘을 주라고 해서 그렇게 하니, 나더러 골반도 좋고 힘도 잘 준단다.
소변이 차있으니 일단 화장실에 갔다오라는데 이상하게도 소변보기가 어려웠다. 결국 소변줄을 꽂고 다시 힘주기에 돌입!
그런데 힘을 줄 때엔 애기가 내려와서 머리가 만져지는데, 힘을 빼면 다시 쏙 위로 올라가버린단다. 그러면서 진통이 올때마다 힘주기를 3번씩 하란다. 그 얘기를 듣고 진통이 올 때마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더 이상 애기가 내려오질 않았다.
그러면서 간호사가 내진을 하더니, 심지어 자궁경부가 붓기 시작했단다. 자궁이 더 열려야 하는데 붓기 시작하면 자연분만이 어렵단다. 4cm에서 더 이상 열리지도 않고.
결국 모든 조건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수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족분만실에 무통까지 했는데, 수술이라니... 억울하다기보다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제왕절개 수술한다고 애한테 안좋은게 아니니까...

곧바로 수술실로 향했고, 잦은 내진에 감염 우려가 있으므로 마지막으로 소독한다고 했다. 자궁경부를 쑤셔대던 그 소독이 내진보다 10배는 아팠다. 그리고 마취-.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간호사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깼다.
수술이 끝났나보다. 수술은 잘 끝났는데 내 피부가 꽤 약해져있어 피를 조금 많이 흘렸단다.
3.86kg의 여자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며 곧 데리고 오겠단다. 태어난 시간은 오후 4시47분.

우리 콩콩이, 이제는 ‘연우’라는 이쁜 이름을 가진 우리 딸과 첫 만남을 가졌다. 난 비록 움직일 수 없었지만, 간호사가 아기를 내 옆에 뉘어줬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힘들게 나온 우리 딸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간호사가 옆에서 울면 애기 제대로 못본다며 울지 말라고 달랜다.
간호사가 아기를 내 옆에 뉘어 젖꼭지를 물리니, 아직 돌지도 않은 젖을, 그래도 엄마젖이라고 쪽쪽거리며 빨아댄다.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목이 메던지...
아, 엄마가 된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새까만 머리숱에 또롱또롱한 눈을 가진 우리 딸과의 첫 만남이 끝나고 나는 입원실로 돌아왔다.

태어난지 한달 남짓 된 지금, 만세 자세를 하고 내 앞에 누워자고 있는 우리 딸을 보니, 그 첫 만남의 감격이 되살아나는 듯 하다.
8달 동안 계속됐던 입덧, 그리고 오래고 괴로웠던 진통을 한순간에 보상받은 듯한 그 느낌, 그 순간.
모유수유도, 산후조리도 힘들고, 늘어가는 잠투정도 만만치 않지만,
무엇이 이 소중한 존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앞으로 점점 더 힘들어지겠지만, 그만큼 점저 더 내 인생에서 더 큰 의미를 차지해갈 우리 딸.
지금 이렇게 세상에 나와있는 아기를 보니,
어찌 생각해보면 뱃속에서의 지난 10달이 꿈만 같고, 처음 만난 날을 떠올리니 정말 새삼스럽다.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해줘야지.
이쁘고 건강하게~ 너는 딸로서, 나는 엄마로서 서로 잘 크자! 사랑해!!!


유난히 바빴던 오늘 아침, 멀리 사는 언니로부터 급히 전화가 왔다.
"한 5분 정도 통화 가능해?"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무슨 일인데? 무슨 일 있어?"
"어린이집에서 정말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어서 너랑 의논 좀 하려구~"

얘기인즉슨,
7살짜리 조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어제 단체로 키즈카페를 다녀왔단다. 
문제는, 그 키즈카페에서 지문을 통한 적성검사를 했다는 것이다
아이가 가져온 알림장에는 지문 적성검사의 결과지와, 좀더 자세한 내용을 상담하고 싶은 부모들은 연락하라는 내용의 알림이 있었단다.

사전에 전혀 공지없이 키즈카페에 가서 아이들의 지문을 찍어댄 것에
언니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나, 어린이집 담임을 찾아가 항의했지만,
이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돼서 나에게 연락해온 것이었다.

지문을 찍는다는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냥 아이들이 미술시간에 곧잘 하는 손도장 찍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지문은 개인이 가진 고유한 것인만큼, 그 자체로 가장 핵심적인 개인정보 중의 하나이다.

오죽하면 지난 1999년 새주민등록제도가 도입되면서
국가가 개인의 지문정보를 취득하는 것과 관련해 인권과 프라이버시 침해논란이 크게 일었겠는가.
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이 엄청났었고,
헌법소원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다.

90년대 초반에 일본정부가 재일한국인들의 지문날인을 받겠다 하여
이에 대해 재일한국인들이 일본정부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싸움을 벌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재일한국인들의 싸움에 지지와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문정보를 국가가 모조리 갖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지문정보는 범죄자들에게나 찍게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지문채취와 보관, 활용에 있어서는
개인의 동의와 함께 법률에 근거해야한다고 헌재가 판결했다고 한다. 

그런데, 국가가 보관하는 것도 논란의 소지가 되는 
지문정보를 키즈카페가 채취, 보관,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보관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이렇게 근거없이 채취, 활용하는데 보관이라도 못할 것 없다는 의심이 드는게 사실이다.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나.

언니한테는 어린이집을 통해 키즈카페로부터 지문정보를 삭제하였음을 공식 확인하는 공문을 받으라고 조언했지만, 그걸로 끝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어린이집 한 곳이 키즈카페에 단체견학 다녀오면
적어도 30~40여명의 주민등록번호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셈이다.
이건 단순히 한두군데의 어린이집 문제가 아니다.

키즈카페에서 '유전자 지문적성검사'라는 것을 지금처럼 계속 하는 이상
우리 아이들의 주민등록번호 그 이상의 개인정보가
아무런 보호장치없이 무차별적으로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민감성이 많이 떨어진다.
어린이집 담임과 원장은, "아이들의 주민등록번호 이상의 정보를 유출한 것이다"라는 언니의 항의를 듣고난 후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급히 사과했다고 한다.

키즈카페가 고의로 지문과 같은 핵심 개인정보를 채취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고의성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르고 하는 것이 범죄로 변할 수도, 혹은 범죄에 노출시키는 방관의 역할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검색사이트에서 찾아보니,
키즈카페가 무료로 지문 적성검사를 해준다는 것에만 흥미를 느끼는 엄마들의 글만 몇개 올라와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은 생각지 못한 채 말이다.

어린이집도, 학부모들도 이렇게 불감증을 가지게 된 것은, 
CCTV로 대변되는 일상적 프라이버시 침해와,
지문날인, 혹은 PD수첩 작가들에 대한 경찰의 이메일도청이나 전교조 표적수사 등으로 대변되는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 침해 등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 널린 인권침해현실에 의한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과도한 연상일까?

한번쯤 그 정보들을 다른 이들이 마음대로 들여다보는 상상만 할 수 있어도
이런 일들이 그냥 막 일어나지는 않을텐데...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한편으로는 무서운 마음이 든다.
작년의 예기치않았던 임신과 갑작스러운 유산,
그 이후 딱 1년만의 소식이었기에 그 무엇보다 조심스러웠다.

임신사실을 알게 된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처음 산부인과에 갔더니 아직 너무 초기라 확진할 수 없다고 2주후에 오라고 했다.
그 2주후는 바로 지난 토요일.
그러나 임신사실을 알게 된 그때부터 시작된 입덧으로 나는 임신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임신 약4주부터 입덧을 시작한 셈.

지난주부터는 입덧이 그야말로 절정에 이르고 있다.
남편이 밥을 할 때마다, 냉장고를 한번씩 열때마다 아로마 향을 한가닥씩 피워야 되고,
먹고 싶은걸 먹는게 아니라, 먹을 수 있는걸 겨우 먹는 수준.
TV에 나오는 식료품 뉴스, 음식 광고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출근도 제대로 못하고, 출퇴근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왕복으로 괴로운 2시간...에효...

내 입덧을 옆에서 보고 있는 사무실의 비혼인 후배는,
TV에서는 입덧이 너무 미화되는 것 같단다.
드라마 주인공들이야 기껏해야 '욱~'하는 정도이니.
이렇게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모습은 드라마는 물론이고 TV에서도 별로 본 적이 없단다.

그러고보면, 그런 이유들 때문인지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자들도 자신이나 주변이 경험하기 전까지는
입덧이 얼마나 힘든 경험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입덧을 경험한 친구들은 대체로 
입덧을 극복하기 위한 휴가제도도 따로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인 것에 비해.

아... 이 입덧은 과연 언제까지 갈까.
자고 일어나면 한달이 훌쩍 지나있어서 입덧이 뚝 멈춰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이다.

너무 괴로워 얼마전 애기를 낳은 친구한테 전화했더니,
몸이 괴로운게 정신이 괴로운거 보단 낫단다.
듣자하니, 그 친구는 입덧이 정말 하~나도 없어서
임신기간 내도록 남편으로부터 임산부 대접은커녕, 내 친구가 임산부라는 생각을 평소에 안하는 것 때문에, 이 친구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단다.
적어도 우리 남편은 지금 엄청 긴장하고 자기가 해줄 수 있는게 없는지 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으니 다행이라나..^^;
그러고보니 그런 점은 있는 것 같다.

하루종일 토할 것 같고 먹어도 안먹어도 마찬가지로 괴로운 상황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작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아, 우리 알멩이가 잘 크고 있는 거겠지... 생각하며 위안을 삼아본다.
잘 참다보면, 지금처럼 정신 겨우 차리고 블로그를 쓸 수 있는 때도 한번씩 올테니까^^;

아직은 태명을 제대로 짓지 못한 우리 알멩이~
이 엄마가 입덧을 열심히 견뎌볼테니까
너무 오랫동안 엄마 고생시키진 말고 잘 커라~^^

새벽에 쓴 소주를 한잔하며...

2009. 7. 24. 02:26 | Posted by 조이~
이 새벽...
쓴 소주 한병과 참치 한 캔.
의도치않은 혼자만의 술 자리.

오늘 나를 짓눌렀던 것들.
그 '데인 자국들'...

아, 블로그에 '나에게 쓰는 편지'를 써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쓴 소주를 한잔 두잔 마시며
그 편지를, 아니, 그 글을 대여섯번은 읽었다.

아, 그래,
꼭 잘하지 않아도 되지.
꼭 힘내지 않아도 되지.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그래, 믿자.
그래, 나를 믿자.

넌 파주에 '믿지못함'을 버리고 왔지만
아직 미처 버리지 못했구나.
아니, 버리지 못했다고 너를 질책하는 것은 아니야.

다만, 기억하자.
'믿지못함'을 버리고 왔었다는 사실을.

나의 활동에 대한 정리 및 홍보, 브랜드화,
그리고 비전에 대한 뚜렷하지 않음...

그것 역시 나 혼자 고민한다고 혹은 고민이 안된다고 고민하면서
나오는 문제가 아님을.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나옴을.
그래서,
나는 내가 최근에 해오던 연락하고 소통하는 일을 계속 매진하는 것만이
나의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지름길임을.
그리고 내가 읽기 시작한 글들을 제대로 읽어내고 나의 시사점을 찾아내는 것이
또한 그 방법의 중요한 보조도구임을.
그걸 잊지 말자.

넌 썩 괜찮은 아이야.
그 말.
나에게 난 다시 할 수 있다는 걸.
그래, 보여주자.
아니, 보여주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믿자.
나를.
그렇게 믿자.

어제 조계사 공연장에서 있었던 시국선언자대회!
여성시국선언을 했던 사람들을 대신해 무대에 섰다.
우리의 개사곡은 소녀시대의 Gee~

비록 음향이 좋지 않아 가사전달이 잘 안되긴 했지만...
나름 큰 호응을 얻었던 "쥐쥐쥐쥐~" 공연.
"쥐쥐쥐쥐~" 말하지 않아도 알아~ 그가 누군지~♪ㅎㅎㅎ

Gee 개사곡 : 쥐쥐쥐~

너무 기가 막혀 정신이 없나봐
말도 안되는 짓 계속하는
쥐쥐쥐쥐~잡아버려 정말 쥐쥐쥐쥐~안되겠어 넌
너무 화가 나서 견딜수가 없어
독재에 빠져서 또라이 짓
쥐쥐쥐쥐~잡아버려 정말 쥐쥐쥐쥐~안되겠어 넌

대한늬우스도 부활하고 4대강 죽이고
언론 장악하고 비정규직 짤라버려
그댄 그댄 미쳤나봐요 국민들은 완전 개무시 하는
그댄 정말 미쳤어
너무 바짝바짝 속이 타네 No No No No No
완전 끔찍끔찍 신경질나 Oh Oh Oh Oh Oh
너무 저릿저릿 몸이 저려 쥐쥐쥐쥐쥐~
썩은 눈빛~ Oh No~ 구린 행동 Oh No No No~

이젠 때가 됐어 더 이상은 안돼
말도 안되는 짓 당장 관둬
쥐쥐쥐쥐~잡아버려 정말 쥐쥐쥐쥐~안되겠어
너무 화가 나서 견딜수가 없어
독재에 빠져서 또라이 짓
쥐쥐쥐쥐~잡아버려 정말 쥐쥐쥐쥐~안되겠어 넌

마스크시위 잡아가고 사교육 늘리고
남북 관계파탄 부자감세 서민증세
그댄 그댄 미쳤나봐요 국민들은 완전 개무시 하는
그댄 정말 미쳤어
너무 바짝바짝 속이 타네 No No No No No
완전 끔찍끔찍 신경질나 Oh Oh Oh Oh Oh
너무 저릿저릿 몸이 저려 쥐쥐쥐쥐쥐~
이젠 그만~ Oh Yeah 꺼져버려~ Oh Yeah Yeah Yeah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얼마만이던가.

아카데미 마지막날 나에게 주어진 시간.
질책이 아니라 애정을 담아,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라는.

40분의 주어진 시간 동안
내가 이곳에 버리고 갈 것 하나와,
내 자신에게 주는 편지를 쓰기 위해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자기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비.
내 안을 들여다보기에 맞춤한 날씨.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내가 만난 것은,
개울가에 자란 이름모를 풀들.
굵은 빗방울 때문에 온 잎들이 흔들려
오히려 반짝이는 것 같이 보이던 그들.
풀들은 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아, 나도 저들처럼 비를 맞아야겠구나.

우물쭈물, 겁,
의심, 냉소, 걱정,
어두움, 확신없음, 대충,
의무감, 기댐, 의존, ...

그리고
믿지 못함.

내가 버려야할 것들.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서 겁먹고 걱정하고 우물쭈물하다
아무것도 제대로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이름모를 풀들은 자기 온 몸으로 맞아내는 비로 가르쳐주었다.

그렇구나.
내가 해야할 것은, 무서워말고 비를 맞으러 가는거로구나.

내가 버려야할 것을 카드에 쓰고,
나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넌 괜찮은 사람이야.
부족한 것들이 있다고 해도 그건 부족함일 뿐이지,
그것이 너 자체는 아니야.
그런 것들이 너를 말해주고 결론짓는 것은 아니야.
존재 자체로도 소중한 것이지.
네가 있어왔던 것, 그것이 축복인걸.
때론 더디 가고, 때론 캄캄하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에 매이진 말자.
넌 잘해왔고 또 잘해갈거야.
그동안 너를 믿지 못하고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해.
믿고, 아껴줄게.
주눅들지 말고 어깨를 더 펴고
걸어보자. 한발 한발 더 성큼.
그리 빠르지 않아도 좋아.
네가 더 많이 미소지으면 좋겠어.
그럴 수 있도록 더 사랑해줄게.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2009. 6. 20
비오는 날, 파주에서-


아...! 그 눈물나던 순간,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소중하던 시간을 기억하리라.

그리고 그곳의 모든 이들이 차례차례 읽어주었던
위로와 치유의 말들 역시 잊지 않으리라.
문구로서는 잊을 수밖에 없겠지만,
몸으로는, 마음으로는 기억하리라.

다시 돌아가는 나의 삶터에서,
그래, 쉽지 않겠지.
하지만,
끊임없이 되새김질하자.
그 되새김질이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나도록.
그렇게 전이되고, 또 지속되도록.


지난 1월, 홍대 앞 클럽에서는 신나고도 의미있는 페스티벌이 펼쳐졌습니다.
이름하여~ Wild Women's Performing Arts Festival (당찬 여성들의 공연 예술 페스티벌)~!

* 참고 : 1회 WWPAF 스케치를 보시려면~ http://such.tistory.com/16

평소 한국여성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활발한 자원활동을 해오던
외국인 자원활동가들이 여성연합 Fund raising을 위해 자체적으로 마련했던
페스티벌은 그야말로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죠.
당일 행사에도 클럽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흥겨운 페스티벌이 되었습니다.

그 두번째~ 페스티벌이 6월 27일에 열립니다~
이번 페스티벌 역시 외국인 자원활동가들이 직접 마련한 페스티벌입니다. 

이번 행사를 직접 조직한 주인공은 바로
여성연합에 항상 든든한 힘이 되어 주고 있는 Rebecca Cant(레베카 캔트)~!
영국이 국적이며, 스스로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그녀는
자신이 가진 예술적 끼와 재능을 십분 활용해 한국의 여성운동을 지원하려는 마음에 가득차있답니다^^
이 페스티벌의 아이디어를 낸 이도 바로 그녀입니다.

페스티벌을 열게 된 이유는??? 
한국의 여성운동을 지원하는 기금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여전히 열악한 위치에서 소외되고 있는 여성아티스트들의 끼와 재능, 수준높은 공연을 맘껏 펼쳐보이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이 페스티벌의 진정한 목적이랍니다. 

어때요?
재능있는 여성아티스트들의 멋진 공연과
한국여성인권을 위해 일하는 여성단체에의 기부가 함께하는 곳~!
초여름밤의 신나고도 뜻있는 페스티벌에 함께 하고 싶으시죠?^^/

 

 

<프로그램 내용>

당찬 여성들의 공연 예술 페스티벌 (Wild Women’s Performing Arts Festival)은
색다르고 특색있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래의 모든 공연들은 재능기부로 이루어진다는 점~^^/

1) 다양한 여성 예술인들의 공연 (외국인 여성예술인& 한국 여성예술인)

(공연은 영어와 한국어로 진행되며, 사회는 영어와 한국어로 함께 진행됨)

- 피카(Pika)의 신나고 귀여운 일렉트로니카 공연
- 진정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흥겨운 집시 밴드인 오르겔탄츠(Orgeltanz)
- 어쿠스틱 블루스로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 강허달림
- 멜리사 캘먼(Melissa Kelman)의 화려한 Fire Dance(불춤)
- 참가자가 모두 함께하는 신나는 참여 퍼포먼스(Fumi Hill: Participatory Movement Activity)
-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에쉬(Eshe)의 벨리 댄스 공연
- 버자이너 모놀로그(The Vagina Monologues)공연의 일부
- 다양한 여성 음유시인들의 공연 : Tamara Kowalska, Nkuli Marope, Lauren Bedard
- 그 외 다양한 공연들

2) Raffle(경품 응모권) 구입을 통한 추첨 행사

3) 특별 제작 티셔츠 3종 판매

4) 헤나 (Henna tattoos) 등

* 문의 : wild womenseoul@gmail.net / 여성연합 02-313-1632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날.
아쉬운만큼 더 많은 시간을 울릉도와 함께 하고 싶었다.

새벽4시30분. 눈을 떠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도동항 좌측 해안을 따라 나있는 행남산책로.
아직 어둡지만 노란색 가로등 불빛에 비춰지는 험한 바위와
어둠속에서도 하얗게 일어나는 파도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산책로라고 하기엔 계단이나 오르막이 좀 있긴 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 행남등대에 올랐다.
날은 곧 밝았지만, 아.. 연무가 너무 짙어 일출은 보기 힘들었다. 
새벽부터 설친 덕에 색다른 맛이 있긴 했지만, 일출을 못본건 역시나 아쉬웠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대나무가 우거진 샛길이 있어 그쪽으로 내려와봤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대나무가 동굴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행남등대로 오르내리는 산길입구(이동화장실 앞)에서 사람들이 주로 가는 길이 아닌 대나무 사이로 나있는 조그만 길로 가보길 강추~!

다시 행남산책로 쪽으로 내려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해가 연무 위로 떠올랐다.
밤바다에 비친 달빛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면,
아침바다에 비친 떠오르는 햇빛은 뭔가 저 마음 깊은 속에 잠자고 있던 뜨거움을 조금씩 불러일으킨다고 할까...

산책을 마치고 다시 서둘러 짐을 챙겼다.
아침 7시. 전날 숙소 주인아주머니가 불러놓은 택시(지프)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위에서 보면 8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88도로라고 부르는 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성인봉 올라가는 길.
왠지 울릉도에 와서 성인봉을 가보지 않으면 정말 울릉도의 제맛을 모르고 가는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택한 마지막 코스.


성인봉까지는 3.8km. 해발 980여m.
거리상으로는 그렇게 멀지 않지만,
나름대로 가파랐다.

그 어느 산이 똑같으랴마는,
성인봉 역시
자기만의 색깔이 있었다.
뭐라 형언하긴 어렵지만..
 
성인봉엔 다양한 계절이 있었다.
입구에서는 여름이었지만,
올라가다보니 마치 가을같은...
그러다 어느 곳에서부터는 겨울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중턱쯤 올라가니까
성인봉 1.5km를 앞두고
이정표 밑에 누군가 써놓은 글씨가 나타났다.



4월 5일에 눈이 많이와 등산로가 폐쇄됐었단다.
무지막지하게 이어져있는 계단과 북쪽 등산로 중에 다시 개방된 듯한 북쪽 등산로를 선택~!
하지만 결국 중간에 돌아돌아 눈밭을 헤치면서 갈 수밖에 없었다.


4명이서 겨우 물 두병만 들고 쫄쫄 굶으면서 올라갔던 우리는 완전 헝그리상태~
헉헉대며 올라가다 여러 등산객들을 만나면서 딸기도 얻어 먹고 달걀에 빵에~어찌어찌 견뎌낼만큼 얻어먹었다. 암~인복을 쌓았던게야^^;


드디어 정상에 도착~!
출발한지 2시간 30분만이다.

성인봉에 오르지 않았으면
울릉도의 본모습을 알 수 있었을까?!
잎은 비록 아직 하나도 나지 않았지만 원시림의 모습 그대로였던 울릉도의 군목들은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듯 환상적이었다.

산의 모양이 성스럽다고 해서 성인봉이라고 한다는데,
이곳에 오르는 과정에서 배우고 깨달으며 그곳에 서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성인(聖人)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들은 모두
성인봉을 오르지 않고
울릉도를 왔다 말하지 말라며
벅찬 감동과 태고의 신비함을 간직한 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제일 힘들었던건 물이 없었다는 사실.
성인봉은 특이하게도 물이 없는 산이다. 중간에 계곡물이 조금씩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겨울에는 눈과 얼음으로 물을 구할 수 없었다.

이미 가지고 가버린 물에다 얻은 물까지 바닥이 나버린 우리는 결국
자연에 몸을(?) 맡겼다.
쌓여있던 눈의 겉면을 헤쳐 사람이 밟지 않은 부분의 눈을 먹기로 한 것.

아직도 살짝 얼어있는
하얀 눈을 먹는 순간...!

우와~!
세상에 이런 맛이 있을까?!!

목이 타들어가는듯 하던 갈증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세상에 태어나
한번도 맛본적 없던
최고의 천연 아이스크림을
맛본 것이다.
중독성도 완전 강해 내려오는 길에 쌓여있는 눈의 깨끗한 부분만 보이면 열심히 먹어댔다~ㅋㅋ

기회가 닿는 분들은 꼭 한번 먹어볼 것을 강추~!
물론 깨끗한 곳에서만 가능하겠지만^^;

정상으로부터 1시간30분만에 내려왔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1시간이나 차이가 났으니 그만큼 경사가 있었던게지..

그렇게 성인봉 등반을 마치고
다시 편도1만원짜리 콜택시를 불러 숙소까지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택시기사님이 88도로에 잠시 세워주셨다. 
흐드러지게 펴있는 벚꽃앞에 잠시 내려 사진을 찍어주는 센스를 발휘~!

숙소 앞에서 목욕탕에 들러 깨끗하게 씻고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먹으러 이번엔 다른 식당에 들렀다.
산호모텔 주인아주머니가 추천해준 홍천뚝배기라는 집에서 시킨 메뉴는 산채비빔밥.
그전날 먹었던 해운식당보다는 이집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니 이제 떠나갈 시간이 되었다.

그래도 여행을 왔는데, 떠나기 전에 선물을 사야지.
남편이 노래불렀던 피데기(반건조오징어)에다 미역취나물, 호박엿을 샀다.
맛나게 먹었던 명이나물(산마늘)절임은,
산호모텔 주인아주머니의 추천에 따라 가정집에서 파는 걸루다가 샀다.
일반 가게에서 파는건 공장에서 만드는건데 국물을 많이 넣어 600그램 정도에 1만원.
가정집에서 파는걸로 우리가 산건 국물은 조금만 있고 나물절임을 주로 해서 7~800그램 정도에 만오천원이었다.


3시는 금새 다가왔다.
이제 울릉도를 떠나야하는구나. 

여행이 끝나가는 것은 언제나 아쉬운 일이지만,
이번엔 아쉬운 마음보다는 행복한 느낌이 더 많이 남았다.
아마 성인봉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2% 부족한 느낌으로 남아있었으리라.

울릉도, 그리고 독도로의 여행.
"쉼표(,) 그녀들에게 말을 걸다-내 마음의 쉼표를 찾아 떠나는 여행"
우리 여행의 제목에 맞게
울릉도와 독도는 내 마음 속에 있는 쉼표를 꺼내 주었다.

한번의 여행이 어찌 모든 쉼표를 찾아주겠는가.
그러나 나에게 이번 여행이 나에게 안겨준 의미와 뿌듯함, 그 느낌을
조금은 더 오래 간직하고 싶다.
단지 여행의 추억으로가 아니라,
내 일상과 활동에서의 여유와 그만큼의 뜨거워지는 열정으로...!

다시 한 번 울릉도 성인봉에서 발끝까지 온몸으로 들이마셨던 공기를 기억해본다.


- 나의 울릉도 여행기 The End.

여행 3일째, 울릉도에서는 2일째 아침이 밝았다. 
모텔 앞에 잠시 나가보니, 뜨겁고 쾌청한 날씨.
음..! 예감이 괜찮다.

아침을 먹고, 우린 숙소에서 나섰다.
독도가는 배는 낮1시에 뜨니까 어차피 그때까진 시간이 남는다.
오전 첫코스로 숙소인 산호모텔에서 가까운 도동 약수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울릉도는 그야말로 해변가+오르막+내리막으로 이루어져있다.
섬 중앙에 있는 유일한 평지 나리분지를 제외하곤 말이다.
울릉도에 도착하자마자 여느 섬과는 다른 느낌은 그 때문이었으리라.
보통의 섬은 무난한 평지나 구릉 정도로 이루어져있으니까.
하지만 도동항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울릉도는 높은 산과 오르막들로 마치 섬이 아닌 또 다른 곳 같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오죽하면 울릉도 택시들은 모두 지프이다. 경찰차도 지프~




도동약수공원 가는 길은 입구에서부터 멀지 않았지만 경사가 꽤 있었다. 
뜨거운 여름(?)햇살에 땀이 삐질삐질~

올라가는 길에
길가에 늘어선 관광용품점 구경도 살짝 하고
인공암벽등반하는 곳도 가보고 하면서
도동약수터에 도착~
생각보다 별로 시간은 안걸렸다.

도동약수터 물은 사실 별로 맛은 없었다.
광천수처럼 약간 탄산이 있었고 철분이 많이 들어가있는지 쇠냄새같은게 좀 났다.

약수터에서 약간 밑에 있는 독도박물관에도 들렀다. 쪼끄만 박물관이긴 하지만, 나름 볼만은 했다.


오전 코스에서 제일 좋았던건 내려오는 길~
박물관 입구 오른쪽으로 가면 샛길같은게 나오는데, 
이런저런 꽃나무들이 멋지게 펴있는 전망좋은 길이었다.
도동약수터로 올라오는 길이 관광객들을 위한 길이라면, 이 샛길은 현지인들이 다니는 길같았다.












 




















어느새 점심시간~
점심식사로는 해운식당에서 홍합밥과 따개비밥을 먹었다. 홍합밥은 12,000원, 따개비밥은 15,000원. 꽤나 비싸서 따로는 못먹겠다 싶었다. 맛은 나름 괜찮긴 했지만 너무 비싸~~~^^;
해운식당은 처음 먹었을 때에는 괜찮다 싶었는데... 두끼 먹다보니 약간 질리는 맛이 있었다. 좀 달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점심을 먹고
이제 드디어 독도로 설레는 항해를 시작~!
배는 포항에서 타고왔던 것보다는 작았다.
그래도 날씨가 워낙에 좋고 바람이 거의 없어서 독도로 무사히 출발했다.

1시간 30분 정도 지났을까.
"지금 우리 배는 독도에 접안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와~드디어 독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독도에 접안을 성공하고 출입구가 열리길 기다려 사람들이 북새통이 났다. 서로 빨리 나가려고 문쪽으로 다들 끼어서~

독도에서는 25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다.
독도경비대가 맞아주는 독도에 드디어 발을 내딛었다~~~
아, 여기가 독도구나~!

우리는 모두 사진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는 것은 오로지 사진 뿐일 것이라는 일념하에~!

독도를 이루고 있는 저 바위에는 못올라가고 부두로 만들어놓은 시멘트 구조물위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이 있긴 했지만, 그나마 여기도 독도의 일부이니 감격스러웠다.
특히나 1년 중 이렇게 배로 입도할 수 있는 날이 35~40일 정도 밖에 안된다니 더더욱..!


25분은 정말 금방 흘러버렸다.
관광객들에게 열심히 손흔들어주던 젊은 독도경비대원들을 뒤로 하고
배는 다시 울릉도로 향했다.
아..! 독도를 밟아보다니. 정말 감격 또 감격~! 밀려드는 감격의 순간이 너무 짧았다는 생각에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독도여 안녕~~~

다시 울릉도에 돌아와서 숙소로 가는 길에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7천원에 파는 호박막걸리를 사와서 한잔씩 걸쳤다.
독도를 직접 만난 감격과 기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울릉도에서 우리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또 하루 깊었다. 

내일이면 이 울릉도를 떠나게 되겠지.
떠나기 전 울릉도의 또 다른 참모습을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해야지.
울릉도는 아직도 나에게 보여주지 못한 모습들이 많이 있으니까.

- 나의 울릉도 여행기3편 끝.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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