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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생각의 찌끄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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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 앞을 지나가다 갑자기 만난 영화관.
문득 극장에서 영화안본지가 꽤 된 것 같단 생각에 무작정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음~역시 영화는 혼자 보러가는 순간 설레이는 법이지^^!

흠... 별로 쓸만한 영화가 많아보이지 않는다.
박쥐는 기나긴 연휴동안 별로 할일도 없으니 남편이랑 같이 보기위해 남겨놔야겠고...
7급공무원은 왠지 극장용 영화는 아닌듯 보이고..
시간도 적당하니, 인사동 스캔들을 보기로 결정!
묵혀둔 문화상품권으로 표를 끊었다. 

미술품 복원과 그를 둘러싼 음모와 배신을 다룬 영화라는 것쯤이야,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출발 비디오여행만 보면 알 수 있는 것.

영화를 다 본 소감을 짧게 말하자면...
NOT SO GOOD, NOT SO BAD.
한마디로 너무 싱거웠다.

미술품 복원이라는 소재에 잠시 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를 오버랩시켜보았지만,
그렇게 오버랩하기에는 미술품 복원의 전문적 과정은 너무 허술했다.
미술품 복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
삐까뻔쩍하는 시설과 줄줄이 늘어놓은 약품들, 재료와 여러가지를 얻기 위해 무지하게 고생하며 애쓰는 사람들, 그리고 지리한 설명들.
아니, 설명이 지리했다기 보다는, 임하룡의 해설은 미술품 복원 혹은 복제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지만, 그 과정을 설득력있게 보여주기엔 화면이 너무 부실했던 것이다. 

벽안도 복원을 위해 김래원이 직접 한 것이라곤 현미경 들여다보기, 몇번의 짧은 붓질과 컴퓨터 두드리기, 사진 찍기 말고는 글쎄... 잘 모르겠다. 
영화 속 김래원의 24시 중에 복원을 위해 쓴 시간은 5분이나 될까?^^;

복제를 위해 삼고초려로 급등장한 '박가'도 마찬가지.
땀까지 뻘뻘 흘리며 그가 한 일은 약품을 황금비율로 섞는 것.
그 약품을 다 섞고 나면 뭔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고나선 김래원이 스프레이로 뿌리는 것이 다였다. 박가의 약간의 설명과 함께.
그 다음 장면이 가장 실망스러웠던 장면.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이 실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스프레이 몇방울에 배접의 그림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설득력이 확~ 떨어지는 장면이라고나 할까...

영화 초반에 김래원이 "서양화는 베끼는게 어렵고, 동양화는 살리는게 어렵다"고 했을 때
준세이와는 또 다른 복원의 모습을 기대했던 것은 초큼 욕심이었구나.. 깨닫는 순간.

사건을 이어가고 엮어가는 편집의 솜씨도 너무 약했다. 
음모와 배신을 담은 영화라면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긴박감을 별로, 느낄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는 크게 두가지 경우인데, 
그 장면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도 자세히 설명되거나, 
엎치락뒤치락하지 않고 너무나도 순조롭게 주인공의 의도대로 될 때이다.
인사동스캔들은? 주로는 후자에 해당하지만, 전자인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영화를 망친 것은 결말.
나름의 반전, 물론 있다.
그러나, 그 반전은 허를 찌르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좀 허탈하게 하는 반전이라고 할까.
너무나도 순조롭게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것에 허탈해하고 있는 마당이므로, 반전이 크게 느껴지진 않는거다.
게다가 이 영화에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게 김래원의 동기가 너~~무 도덕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그 허탈은 더해진다.
바로 그 점이 영화가 끝나는 순간 영화를 지루하게 느끼게 만드는 점이다. 

그래도 이 영화가 살리는 것도 있다. 배우들.

제일 큰 수확은 엄정화의 팜므파탈!
연기를 잘 하지만, 그녀 특유의 심~한 성형수술로 인해 얼굴표정 연기가 더이상 안된다는 것에 나는 항상 안타까워했었다. 얼굴이 안움직이니...^^;; 그녀에게 파이란의 최민식처럼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로 울어버리는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는 바.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는 기존의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얼굴 표정을 부자연스럽게 활짝 피면서 착한 척 할 필요없는 연기였으므로, 그녀의 얼굴 사정에서는 매우 다행인 점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팜므파탈 연기는 그녀에게 딱 맞는 옷처럼 자연스러웠다.
간만에 자연스럽게 느껴진 그녀의 연기였고, 나는 기꺼이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래원 역시 자연스럽게 연기했지만, 김래원은 약간 더 냉철해진 식객의 성찬 같은 느낌이었다. 이젠 그도 좀 더 달라져야할텐데...
조연들도 괜찮았다. 특히 이제 확실히 배우인 것 같은 임하룡, 영화는영화다로 존재감을 알린 고창석, 누군지 이름을 찾아보게 만든 마동석도...

인사동의 스캔들은 싱거웠지만, 배우들은 나름대로 간을 맞췄다.
아마 이 영화가 크게 흥행하지는 못할 듯 싶지만^^;
이 영화에 나온 배우들은 더 많이 발전하길~
특히 엄정화는 이제 팜므파탈의 연기를 더 많이 집중해서 해보길 강추하며...!

"더 리더(The Reader) : 책 읽어주는 남자"

제목만 겨우 알고 우연한 기회에 가게 된 시사회.
기껏해야 케이트 윈슬렛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라는 점, 그리고 나이든 여자와 어린 남자의 사랑 정도로만 알고 갔다.

영화 초반을 장식하는 배우들의 파격적이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한 노출.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건 뭔가...보통의 헐리웃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걸?!

영화 중반 이후부터 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헐리웃 영화 중에 내가 이렇게 눈물흘린 적이 있던가? 그녀와 그가 만들어내는 눈물은 결코 극적이지 않았고, 그러므로 억지스럽지 않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최근 몇달간 내가 본 영화 중 단연 최고였다. 
글쎄...극적인 멜로영화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좋은 선택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자신의 모든 생애와도 맞바꿀 수밖에 없었던 비밀과 자존심, 죄책감을
이 영화는 영화 상으로 가능한 한 최대한을 표현해주고 있다.

벤자민버튼의 브래드 피트도 나를 놀랍게 했지만,
더 리더의 케이트 윈슬렛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이 상이 영화선택의 판단기준을 제공해주지는 못하지만..)이 결코 아깝지 않다는 것,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더 깊어진 배우를 만난 즐거움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그리고 데이빗 크로스라고 했던가.. 남자주인공의 10~20대를 연기한 남자배우의 발견 또한 소중하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제 소감을 여지없이 적으려다보니..;; 영화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영화 보신 후에 다시 들러주세요~ *



무기징역을 선고받을지언정,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던 그녀.
그녀에게 자신의 사적 비밀, 혹은 컴플렉스를 드러낸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의 남은 모든 생애와도 맞바꿀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외근직에서 사무직으로의 승진은
그녀 자신이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었기에,
그녀가 새로 찾게된 인생의 기쁨과 사랑, 터전마저 모두 포기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승진을 포기하고, 삶의 터전을 옮기고, 나치 친위대로서 자기를 망치는 길은,
그녀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지키고 싶었던 최후의 보루-그것이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내면이 세상과 맞닿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그녀 자신이 다른 세상과 타인과의 관계 맺는 시작이었을 수도 있겠지.
또는...
그녀의 온몸으로 똘똘 뭉쳐져있는 컴플렉스로부터의 일시적인 탈출과
새로운 자신, 혹은 자신과 세상의 새로운 만남을 향한 기대와 희망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가 책을 읽어준 그 순간은,
그래서 그녀에겐 새로운 인생이었으리라.
인생의 전부...
몇십년만에 교도소에서 만난 마이클이 한나에게 "옛날일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마이클은 친위대로서 만행에 가담했던 그녀의 "옛날"을 묻지만,
한나는 그와 그녀가 함께했던, 즉 그가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그 "옛날"을 말한다.
그것이 그녀에겐 인생이었기에, 단순히 옛날일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ing이리라.
그러므로 그의 녹음테이프를 통해 다시 되살아나는 자기 인생의 절정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컴플렉스에 직면하는 도전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녀는 그런 자신의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기에
자신의 컴플렉스로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막 빠져 나와 바깥으로 걸어가려하던 그녀에게
마지막의 선택은 어쩌면 최선이었을 것도 같다. 

이 영화는 표현의 방식과 수위조절이 너무나도 훌륭하다.
제일 돋보이는 것은,
그가 그녀에게 "나는 당신이 문맹인 것을 알았다(알고있다)"는 식의 화법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끝까지 개인적 비밀을 숨김으로써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고 인정해준 사람, 이것이 바로 The Reader이다.
그가 리더(reader)로서 책을 녹음해줄 때, 그리고 그녀가 그 책을 들을 때
그것만으로도 삶의 여정과 깊이가 드러나고 표현되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고 감동이 따라온다.

그가 책을 녹음하고,
그녀가 녹음된 책을 듣고,
녹음된 책을 듣고 듣고 또 듣다가
단 한번도 자신의 손에 들어보지 않았던 책을 스스로 찾게 되고,
그러다 단 두 줄의 짧지만 긴 편지를 쓰게 되는 그 과정들...
선에 불과하던 싸인이 정확한 자기 이름으로 변하는 순간들...
그 변화의 흐름이 적절히 절제되면서도 아낌없이 표현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소소한 다른 것들도 함께 생각해볼만하다.
나치의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 심판하는 자들과 심판받는 자들이 남았다. 
영화를 보면서 침묵하거나 방관함으로써 동조했던 다수의 독일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을 악용하여 그녀를 주동자로 모는 심판받는 자들 속에서
"임무", "직업"으로서 가담했음을 있는 그대로 덤덤하게 털어놓는 한나는
오히려 무식하고 순진해보이기까지 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사실 나는 과연 심판하는 자들은 그렇게 떳떳하기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재판하는 씬과 마지막 생존자 가족을 만나는 씬에서 감독은 이를데없이 현명하다.
감독은 그녀는 선하거나 억울한 희생양로 만들지도,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진부하지만 진심을 알 수 없는 모습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유태인 생존자와 가족들도 덤덤하게 그려낸다.
이 시점에서 역사적 정의만을, 혹은 사적인 진실과 그 고통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감정적으로 그렸다면 이 영화는 이렇게 빛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서도 한동안 자막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뒤늦게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출구 앞에 붙어져있는 포스터를 보고,
이 영화의 감독이 디 아워스와 빌리 엘리어트의 감독임을 알았다.
어쩐지 섬세한 연출이라 했다.

다만, 한국어판 포스터에 적힌 문구는 이 영화를 확 깎아먹었다.
"사랑을 말하지 못한 남자, 그 사랑을 믿지 않았던 여자" 라니...
"3월, 한 남자의 일생을 뒤흔든 사랑이 시작됩니다"라니...
사랑얘기라고 해야 먹힌다고 생각해서일까..
영화의 핵심내용에서 꽤나 비켜간 홍보사의 초점이 몹시 아쉬웠다.

이렇게 스포일러를 왕창 뿌렸지만, 
이 글만 보고 영화를 알았다고 생각하지는 말시길..!
안타깝게도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할 것 같긴 하지만,
꼭 한번 봐야할 영화로 강력 추천한다~!
참,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책이라고해야 이론서들만 깔짝였었는데..

얼마전 한번씩 책지름신이 강림해주시는 울짝꿍이 책을 여러권 사왔다.
그 중에 내 눈에 띈 책,
우락부락하고 원색적인 일러스트로 장식된 책의 이름은 <남쪽으로 튀어!>

뭐.. 소설쯤 읽어주는거도 괜찮겠다 싶어
책주인의 구박을 받으며 내가 먼저 개봉했다.
그런데..헉! 개봉과 동시에 광속도로 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옛 일본 과격파 운동권 출신의 "세금따윈 낼수없어!" "국민의 의무를 강요하는거라면 난 국민이길 포기하겠다"고 옆집앞집시선따윈 전혀 개의치않고 밤낮으로 큰소리를 빽빽대는 아빠 이치로,
겉으론 보통의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과거를 가지고 있는 엄마 사쿠라,
평범한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짖지만 결코 그 꿈이 이뤄지기엔 쉽지 않아보이는, 뭔일이든 걱정이 앞서는 열두살 짜리 지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온갖가지 일화들과 관계들...

오쿠다 히데오는 어느 인터뷰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이 그때의 시선으로 계속 순수하게 살아간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며 우에하라 이치로를 그렸다고 했다.

소설 속의 우에하라 이치로는 관을 적으로 여기고, 누군가 얘기할라치면 논리를 전개해보라 윽박지르고, 자식들에게도 설명보다는 자기가 정한 원칙만을 들이대기도 하고, 타협과 배려보다는 냉소와 자기주장만 너무 꼿꼿이 내세우곤 한다.

아마 이런 모습은 일본의 옛 과격하고 경직됐던 운동권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지 않을까,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이건 일본 운동권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작가가 원했던 '순수'의 모습은 소설 전체에, 그리고 특히 후반부에 그들이 자신만의 이상향을 찾아 떠난 그 곳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도시 아닌데서 산다는건 생각도 못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상당히 좋아. 아마 아침 일찍 일어나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게 인간의 본질인가 봐.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하는 것들이 있어...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앟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 중 한사람이야..

작가가 이치로의 입을 통해 비판하고 있는
국가주의,전체주의 교육의 억압, 시민운동의 문제과 한계, 자본의 착취 같은 것을 굳이 함께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한 구절로서도 나는 어느새 허점투성이 우에하라 집안 전체를 응원하고 있는 이유로 충분해졌다. 

끝까지 저항해야 서서히 변한다는, 그 변화는 어느 누구도 대신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이 구절을 읽으며 이건...
지난 몇달간 들었던 수백만개의 촛불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촛불의 홍수가 지나간 뒤 더 퍽퍽해진 이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있는 일상의 촛불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하는.


나를 자신의 문장세계에 한 열흘을 푹 잠기게 만들었던
그래서 그의 소설 4개를 줄줄이 읽게 만들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꼭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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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여, 내가 읽었던 나머지 책들,
<공중그네>, <인더풀>, <면장선거> 모두 인상깊고 재미있었지만
이왕이면 공중그네만 읽는게 나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소설에서도 속편은 점점 재기가 빛을 잃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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