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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생각의 찌끄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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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은지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나갔다.
아기 낳기 전까지는 낳자마자 출산일기를 꼭 써둬야지 결심했었는데,
낳고보니 내 몸 추스리고 애기 보기도 바빠, 한달이 훅~ 지나고나서야 그것도 며칠에 걸쳐 겨우 쓸 수 있었다.

40시간 진통 끝에 수술한 나의 출산일기를 시작한다.

7월 14일 새벽 5시 50분.
자다가 뭔가 느낌이 이상해 화장실로 갔다.
선홍색의 피...! 아, 이게 이슬이구나. 보면 딱 알 수 있을거라더니, 이게 이슬인가 싶다.
초음파 상으로 애기가 너무 커서 예정일 전인 7월 16일에 유도분만 날짜를 잡아놓고 있었던 상황. 자연진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왠지 전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서 도와주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슬이 비쳤으니 2~3일 내에 진통이 오겠지, 그야말로 출산이 임박했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약간은 긴장되고, 약간은 설렌다.
한 2주동안이나마 열심히 걸은 덕분인지, 아님 친구의 조언에 따라 전날 15층 계단을 3번씩 걸어올라간 덕이었는지는 몰라도 이슬이 비치고 그날 가진통도 한번씩 왔다. 가진통이 와도 진통이 더 빨리 오라고 열심히 걸었다.
이제 언제 출산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퍼붓는 소나기를 뚫고 점심은 삼겹살로, 저녁은 보쌈으로 에너지 비축!!

7월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진통이 시작되었다.
5분 간격 진통이 오면 병원으로 오라고 했는데... 아직 진통은 10~15분 간격이고, 아프긴 하지만 아직은 참을만 하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진통간격이 줄어들겠지. 진통이 올때마다 적어놓고 시간간격을 체크한다.
참을만하다고 해도 진통은 진통인지라 한숨도 자지 못하고 날밤을 샜다. 새벽 무렵에는 8분 정도까지 간격이 줄어들었는데, 아침이 되니 다시 10분 간격이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진통간격은 그대로지만, 기력이 점점 떨어진다.

7월 15일 오전 11시 30분, 결국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내진을 해보더니 자궁문이 1.5cm 정도 열렸단다. 초음파상 추정 몸무게는 4.1kg!!
다음날 유도분만을 잡아놨으니 일단 자연진통 간격이 줄어들기를 기다려보자고 한다. 집에 가서 기다려도 되고 입원해서 기다려도 되는데, 기력이 딸리고 힘드니 입원해서 기다리는게 낫지 않겠냐고 권한다. 집에 가도 답이 없어 입원했다. 분만실 옆 대기실(?)로 가서 태동기를 달고 간격을 체크했다. 간격은 그대로 10분을 유지. 더 줄어들지 않기에 입원실로 직행했다.
입원실에서도 진통간격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된다. 강도도 여전히 참을만하지만 아프다. 편히 누워있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허리와 배로 진통이 그대로 온다. 그렇게 15일 밤도 입원실 침대 위에 앉아서 그대로 지샜다. 진통 간격 사이사이 약간씩 졸은 게 전부.

10분 간격 진통만 무려 34시간을 하고 맞이한 7월 16일.
새벽 0시부터 금식을 하고 오전 8시부터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다.
진통이 점점 심해지고 간격도 줄어든다. 분만실 간호사는 간격에 비해 강도가 세고 한번 진통이 올 때 오래 간다고 얘기해줬다. 오전9시가 넘어 회진 온 주치의는 인사하는 나를 보더니 아직 덜 아픈가보다고 하면서 더 아파야 낳겠단다. 으~~ 난 이미 많이 힘든데...!!!

시간이 갈수록 진통이 심해지더니 갑자기 아래에서 물이 터지는 느낌이 나면서 콸콸 쏟아진다. 양수가 터졌다. 그리고나선 그야말로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진통.
태동기의 진통강도가 100을 가리킬 때마다 양수가 주룩주룩 나온다.
하지만 내진할 때마다 자궁문은 2cm 이상 잘 열리지가 않는다.
친언니도 조카 낳을 때 진통은 진통대로 하고 자궁문이 안열려 결국 수술했었던지라, 친정에선 언니와 엄마가 번갈아가며 전화를 해서 그냥 바로 수술하라고 난리다.
진통이 심해지면서 그냥 수술한다고 할까 싶은 유혹을 견뎌내는 것도 무지 힘들었다. 친정에선 분만실 밖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수술하라고 얘기하고, 어떻게 할지 묻는 남편에게, 일단 12시쯤으로 되어 있는 가족면회시간까지 최대한 견뎌보겠다며 버텨보기로 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분만실 간호사 한명이 커다란 짐볼 같은 걸 등 뒤에 대줬다. 아픈건 여전하지만 허리랑 척추를 받쳐줘서 그런지 그냥 누워있을 때보단 낫다.

정오가 가까워오면서 지옥이 시작됐다.
진통 사이 안아픈 시간이란 느껴지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짐승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소리지를 기운조차 없어 신음소리와 함께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까지 열심히 하던 심호흡도 더 이상 쉽지가 않았다. 숨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세상에 이런 고통이 있구나... 싶던 순간들.
이런 고통도 견디는데 뭔들 못하겠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이 그 고통 속에서 나를 견디게 했나... 참 놀랍기도 하다.

이따금씩 내진을 하던 간호사가 자궁문 열리는 걸 돕겠다고 마사지를 했다. 말이 마사지지, 한마디로 손을 넣어 쑤셔댔다. 그래도 좋다. 자궁문만 열린다면...!!
그렇게 낮 1시30분이 되었다. 3cm가 조금 넘게 열렸다는 말과 함께 가족분만실로 옮겨주겠단다.
아...! 드디어 가족분만실이다!
이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고 이제 자연분만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파도 희망이 생겼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남편과 드디어 상봉했다.
진통이 정점에 이르고 있던 나는 남편을 만남 안도감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어찌할바 몰라하며 계속 주물러줬다.

4cm가 열려야 무통을 주는데, 내가 너무 아파하니까 무통주사를 주겠단다.
잘 구부려지지도 않는 몸을 무통 한 번 맞아보겠다고 있는 힘껏 구부렸다.
그리고 맞이한 무통천국의 세계~!!!
무통주사를 발명한 사람은 노벨평화상 감이라더니, 내가 줄 수 있는 상이라면 백만개는 주고 싶다. 진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순식간에 지옥에서 구출된 느낌이랄까. 그동안은 그야말로 낮은 신음소리와 고통스런 흐느낌만 하다가 이제야 남편과 대화가 가능해졌다. 웃어가며 남편과 무통을 찬양하기 바빴다.
무통주사는 한 2시간쯤 효력이 가니까 그 사이에 낳아야 된단다.
내진하던 간호사가 자궁문이 더 안열리긴 했지만 힘주는 연습을 해보잔다. 똥누듯이 항문에 힘을 주라고 해서 그렇게 하니, 나더러 골반도 좋고 힘도 잘 준단다.
소변이 차있으니 일단 화장실에 갔다오라는데 이상하게도 소변보기가 어려웠다. 결국 소변줄을 꽂고 다시 힘주기에 돌입!
그런데 힘을 줄 때엔 애기가 내려와서 머리가 만져지는데, 힘을 빼면 다시 쏙 위로 올라가버린단다. 그러면서 진통이 올때마다 힘주기를 3번씩 하란다. 그 얘기를 듣고 진통이 올 때마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더 이상 애기가 내려오질 않았다.
그러면서 간호사가 내진을 하더니, 심지어 자궁경부가 붓기 시작했단다. 자궁이 더 열려야 하는데 붓기 시작하면 자연분만이 어렵단다. 4cm에서 더 이상 열리지도 않고.
결국 모든 조건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수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족분만실에 무통까지 했는데, 수술이라니... 억울하다기보다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제왕절개 수술한다고 애한테 안좋은게 아니니까...

곧바로 수술실로 향했고, 잦은 내진에 감염 우려가 있으므로 마지막으로 소독한다고 했다. 자궁경부를 쑤셔대던 그 소독이 내진보다 10배는 아팠다. 그리고 마취-.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간호사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깼다.
수술이 끝났나보다. 수술은 잘 끝났는데 내 피부가 꽤 약해져있어 피를 조금 많이 흘렸단다.
3.86kg의 여자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며 곧 데리고 오겠단다. 태어난 시간은 오후 4시47분.

우리 콩콩이, 이제는 ‘연우’라는 이쁜 이름을 가진 우리 딸과 첫 만남을 가졌다. 난 비록 움직일 수 없었지만, 간호사가 아기를 내 옆에 뉘어줬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힘들게 나온 우리 딸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간호사가 옆에서 울면 애기 제대로 못본다며 울지 말라고 달랜다.
간호사가 아기를 내 옆에 뉘어 젖꼭지를 물리니, 아직 돌지도 않은 젖을, 그래도 엄마젖이라고 쪽쪽거리며 빨아댄다.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목이 메던지...
아, 엄마가 된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새까만 머리숱에 또롱또롱한 눈을 가진 우리 딸과의 첫 만남이 끝나고 나는 입원실로 돌아왔다.

태어난지 한달 남짓 된 지금, 만세 자세를 하고 내 앞에 누워자고 있는 우리 딸을 보니, 그 첫 만남의 감격이 되살아나는 듯 하다.
8달 동안 계속됐던 입덧, 그리고 오래고 괴로웠던 진통을 한순간에 보상받은 듯한 그 느낌, 그 순간.
모유수유도, 산후조리도 힘들고, 늘어가는 잠투정도 만만치 않지만,
무엇이 이 소중한 존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앞으로 점점 더 힘들어지겠지만, 그만큼 점저 더 내 인생에서 더 큰 의미를 차지해갈 우리 딸.
지금 이렇게 세상에 나와있는 아기를 보니,
어찌 생각해보면 뱃속에서의 지난 10달이 꿈만 같고, 처음 만난 날을 떠올리니 정말 새삼스럽다.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해줘야지.
이쁘고 건강하게~ 너는 딸로서, 나는 엄마로서 서로 잘 크자! 사랑해!!!


작년의 예기치않았던 임신과 갑작스러운 유산,
그 이후 딱 1년만의 소식이었기에 그 무엇보다 조심스러웠다.

임신사실을 알게 된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처음 산부인과에 갔더니 아직 너무 초기라 확진할 수 없다고 2주후에 오라고 했다.
그 2주후는 바로 지난 토요일.
그러나 임신사실을 알게 된 그때부터 시작된 입덧으로 나는 임신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임신 약4주부터 입덧을 시작한 셈.

지난주부터는 입덧이 그야말로 절정에 이르고 있다.
남편이 밥을 할 때마다, 냉장고를 한번씩 열때마다 아로마 향을 한가닥씩 피워야 되고,
먹고 싶은걸 먹는게 아니라, 먹을 수 있는걸 겨우 먹는 수준.
TV에 나오는 식료품 뉴스, 음식 광고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출근도 제대로 못하고, 출퇴근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왕복으로 괴로운 2시간...에효...

내 입덧을 옆에서 보고 있는 사무실의 비혼인 후배는,
TV에서는 입덧이 너무 미화되는 것 같단다.
드라마 주인공들이야 기껏해야 '욱~'하는 정도이니.
이렇게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모습은 드라마는 물론이고 TV에서도 별로 본 적이 없단다.

그러고보면, 그런 이유들 때문인지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자들도 자신이나 주변이 경험하기 전까지는
입덧이 얼마나 힘든 경험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입덧을 경험한 친구들은 대체로 
입덧을 극복하기 위한 휴가제도도 따로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인 것에 비해.

아... 이 입덧은 과연 언제까지 갈까.
자고 일어나면 한달이 훌쩍 지나있어서 입덧이 뚝 멈춰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이다.

너무 괴로워 얼마전 애기를 낳은 친구한테 전화했더니,
몸이 괴로운게 정신이 괴로운거 보단 낫단다.
듣자하니, 그 친구는 입덧이 정말 하~나도 없어서
임신기간 내도록 남편으로부터 임산부 대접은커녕, 내 친구가 임산부라는 생각을 평소에 안하는 것 때문에, 이 친구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단다.
적어도 우리 남편은 지금 엄청 긴장하고 자기가 해줄 수 있는게 없는지 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으니 다행이라나..^^;
그러고보니 그런 점은 있는 것 같다.

하루종일 토할 것 같고 먹어도 안먹어도 마찬가지로 괴로운 상황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작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아, 우리 알멩이가 잘 크고 있는 거겠지... 생각하며 위안을 삼아본다.
잘 참다보면, 지금처럼 정신 겨우 차리고 블로그를 쓸 수 있는 때도 한번씩 올테니까^^;

아직은 태명을 제대로 짓지 못한 우리 알멩이~
이 엄마가 입덧을 열심히 견뎌볼테니까
너무 오랫동안 엄마 고생시키진 말고 잘 커라~^^

새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한,
기쁘면서도 오묘한,
그 무엇...

요즘 몸이 안좋았다.
열흘새 창원에 2번, 부산에 1번.. 승용차와 기차로 장시간 이동한 것만 30시간 남짓.
게다가 한 프로젝트 정리하고 또 다른 프로젝트 신청하느라 이틀을 새벽4시에 일어났다.
그토록 무리했으니 몸이 안좋을밖에. 

결국 어제는 출근하자마자 휴가원을 던지듯 내고 퇴근해버렸다.
집에 와서 3시간을 내리자고 일어나 밥을 먹었지만, 메슥거리는 속도, 피곤한 몸도 잘 달래지지 않았다.
최근에 다시 재발한 갑상선이겠거니... 생각하고 약 꼬박 챙겨먹으려 노력했을 뿐.
그러다 문득 그래도 혹시나 싶어, 약국에 갔다왔다.

설마...했던 것이 금새 결과로 나타났다. 10초도 지나지않아 나타난,
두 줄의 선명한 보라색.
눈을 씻고 다시 보았다.
..임신이다.

아니... 이게 아닌데...
내년 초 3~4월경에나 임신을 계획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난, 갑상선 약을 먹고 있었으니 더더욱 당혹스러울 밖에.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시원찮았다.

나의 당황스러워하는 반응에 남편도 기쁘지만 어찌 표현해야할지 모른채
눈치를 보며..ㅋㅋ 나를 꼭 껴안아주고 다른 때보다 손을 자주 잡아주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바쁘다는 그를 굳이 데리고 함께 병원에 갔다.
초음파로 처음 아이를 만났다.
제 딴엔 작아도 생명체라고 심장이 뛰고 있었다.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작지만 분명한 박동...
시큰둥하던 그도 눈이 휘둥그레해져 초음파 화면속으로 뛰어들듯 빤히 쳐다보며 신기해했다.
이미 아이는 4~5주 정도 자라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얘는 자기의 존재 신호를 나에게 계속 보내고 있었다.
모를 때에는 그것이 임신의 징조임을 몰랐던 많은 증상들이, 퍼즐처럼 맞아들어갔다.
자기 몸에 무관심한 여성들을 보며 약간은 한심하게 생각했던 그 행동을 내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산모수첩을 받아들고 뒤늦게 출근했다.

어찌됐던 모든 사람들이 축하해주었다.
특히 친언니의 8년간 불임으로 속을 까맣게 태우고 또 태웠었던 친정엄마는 너무 기뻐하시면서 또 고마워하셨다. (언니는 모든 불임시술이 실패했지만 결국 9년째 자연임신해 지금은 이쁜 조카가 자~알 크고 있다)
4번의 항암치료를 끝내신 엄마는 이제 모든 걱정을 놓으셨다면서 자신의 건강회복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기쁜 숨을 내쉬셨다.


... 아직은 모르겠다.
난 아직 준비가 안되었지만, 생명은 이미 잉태되었다. 
이제 가만히 앉아있어도 내 자신만의 몸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지고, 
내 몸의 조그만 증상도 뭔가 말을 거는 것 같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듯 하다. 

우린 아직은 부모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부모될 준비라는 건, 뭐... 완벽한 준비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런건 가능하지도 않은 말이니까.
다만 각자의 시간을 얼만큼 투자하고 배려하는가에 대한 결심이라고나 할까...

어제오늘의 교훈(?)은,
어쨌든..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되는건 아니라는 거다.
뭐 그렇다고 언제는 계획한대로만 잘된건 아니지만.

이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아직은 내년 상반기만 일을 하고 잠시나마 접어야되게 정해져버린 이 상황이
약간은 억울하지만.
그 억울한 마음이 가시도록 나도 준비하지만,
이미 얼마간의 육아휴직을 나름 결심한 남편 역시 준비시켜야겠다. 

2주후에 만나는 아이는 얼마큼 자라있을까...
근데 정말, 태몽은 누가 꿔준걸까...???
(태몽없는 아이는 무효라며 억울해하던 남편의 모습이 오버랩되는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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