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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생각의 찌끄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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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고 집에 먹을것도 없어서 밥먹으러 밖에 나갔다 왔습니다.
얼마전 일산칼국수 가봤을 때 명지병원 쪽에 음식점들이 늘어서있던 것이 기억나서 그쪽으로 갔죠.

차타고 둘러보면서
남편은 해장해야한다고 해서 고기집이나 국수집 가기는 그렇고,
저도 딱히 먹고 싶은게 있는건 아닌지라 고민하다
<두부마을과 돌솥밥> 간판을 보고 들어갔어요.
뭐...두부전골 정도면 해장이 되리라 생각하구요.

두부버섯전골에다, 각각 천원씩 추가하면 돌솥밥으로 해준다고 해서
총2만원에 두부버섯전골과 돌솥밥 2인분을 시켰습니다.
 
전채로 순두부와 샐러드, 느타리버섯구이와 두부김치가 나오더군요.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순두부는 고소하니 맛있더군요.
시간이 좀 걸린다 싶더니 반찬들이 먼저 나왔습니다.
반찬 중에서 두부에 무친 나물과 시래기무침, 고추튀김은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나온 두부전골!
... 아니! 이건 국물이 왜 이래?!
약간 멀건데다 딱 보기에도 맛이 없어보이더군요. (사진을 안찍은게 안타깝네요...뭐 그럴 가치도 없었지만...)
그래도 끓이다보면 좀 괜찮아지려니 했습니다.

전, 제가 들어가자고 해서 들어간 음식점에서는 웬만해선 밥먹는 중에 크게 불평하지 않는 편입니다.
민망하잖아요..
근데, 이건 정.말.너.무.심.하.더.군.요!!!
전골에 들어가있는 두부는 심심하고, '각종 버섯'은 겨우 느타리,팽이,간간이 있는 표고버섯이 전부이며,
눈꼽만치 들어가있는 소고기는 정체를 알 수 없고, 낙지는 언제적껄 썼는지 당췌 씹히질 않더군요. 이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국물은 이건 뭐 라면스프도 아닌 것이 도대체 뭘 넣고 끓였길래 고따구 맛이 나는지...!
패밀리가떴다 애들이 끓인 최악의 국도 이것보단 나으리라 생각들더군요.
어찌 그런 국을 내놓고선 음식점을 하는지... 저같으면 부끄러워서 못할거 같던데 말이죠.

두부마을이 체인이라 두부음식을 좋아하는 저는 특별히 아는데가 없는 곳에서는 두부마을에 간적이 한두번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근데 손님은 꽤 많더라구요. 다른 음식들은 괜찮은건지, 아님 그분들도 처음 온건지 모르겠지만요^^;;;
 
하여튼 계산하고 나오는데 돈이 무지하게 아깝더라구요.
계산대 주인한테 '정말 맛없어 죽는 줄 알았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별로 그럴 가치조차 느끼지 못해 그만뒀습니다.
나올 때 공짜로 가져가라고 놔둔 콩비지만 큰걸루다가 두 봉지 가져왔지요.

먹는 내도록 완전 불평하면서 먹었네요.
맛없는 걸로 배를 채울 때의 고통을 심히 느끼면서요..^^;;;
 
고 근처에 들르실 일 있으면 두부마을과 돌솥밥은 절대 비추입니다.
저희와 같은 난데없는 피해자(!)가 없길 바라며;;;


 

지난 주 수요일, 두번째로 찾아간 산부인과.
갑작스레 찾아온 임신소식처럼 유산은 또 다시 갑작스러웠다.
애기집은 있었지만, 아기의 심장은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았다. 
그  소식을 전해주던 의사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뒤로 하며 1시간여를 그렇게 울었다.

계류유산.
이름만 들어봤던 것이 나에게도 왔다.
의사는, 나의 유산이 자궁내 환경의 문제라기 보다는 아기(수정란) 그 자체가 유전적 결함에 의해서 자연도태되듯이 유산된 경우라고 했다.
하혈을 하거나 아파서 유산사실을 알게 된 것이 아니어서, 
의사의 말처럼 다른 외부적 요인 때문이 아닌데다
아기는 이제 겨우 5~6주에 불과해 아직 정이 많이 들지 않아서였는지
정신적 아픔이 많거나 하진 않았다.

유산사실을 알게된 다음날 수술을 하고 아픈 배를 움켜쥐고 집에 돌아와
시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미역국을 먹었다.
시어머니가 너무 고마웠지만, 그래도 친정식구들이 멀리(부산) 있어 이럴 때 못보는건 참 아쉽고 서운한 일이었다. 친정엄마도 항암치료 후 회복기간이셔서 아무리 KTX라도 장시간 여행은 불가하니 하루에 2~3번씩 전화통화를 할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여성단체 활동을 한다는 것이 새삼 고마운 시기였다.
나의 유산소식을 알게 된 사무실 식구들은 나의 모든 일을 다시 정리해 각자 나눠가졌고,
나에게 열흘의 휴가를 통보(!)했다.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말고 집에서 푹~쉬라고.
오늘까지가 마지막 휴가이다.
휴가기간동안 푹 쉬긴 했지만 책이라도 좀 읽어둘껄...하는 아쉬움과 후회는 왜 꼭 마지막에 절실해지는걸까...ㅋㅋ

입덧은 수술 이틀 후 정도부터는 완전히 없어졌다. 흔적도 없이.
이제 한 2달 정도는 피임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내일은 병원에 다시 가서 수술 이후 깨끗하게 완치되었는지 초음파검사를 할 예정이다.

갑작스레 다가왔다가 부모될 준비를 시작하려는 찰나 떠난 애기.
아마 그 아이는 우리 부부에게 부모가 된다는게 뭔지 사색하고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라고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왔다간 모양이다.
그 아이로선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부부는 생명의 소중함과 '부모'라는 이름으로 시작될 우리의 또 다른 정체성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된 셈이니까.

이제 두 달 이후, 정확히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건강하고 야무진 애기가 곧 찾아오겠지.
내년에 아기를 가질거라고 계획은 했지만,
이제 그 계획이 바램이 되고 있다. 더 소중하고 조심스러운 바램.
곧 찾아올 우리의 아기를 생각하며,
혼자 슬며시 지어보는 미소로 나의 유산 휴가를 끝낸다.

새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한,
기쁘면서도 오묘한,
그 무엇...

요즘 몸이 안좋았다.
열흘새 창원에 2번, 부산에 1번.. 승용차와 기차로 장시간 이동한 것만 30시간 남짓.
게다가 한 프로젝트 정리하고 또 다른 프로젝트 신청하느라 이틀을 새벽4시에 일어났다.
그토록 무리했으니 몸이 안좋을밖에. 

결국 어제는 출근하자마자 휴가원을 던지듯 내고 퇴근해버렸다.
집에 와서 3시간을 내리자고 일어나 밥을 먹었지만, 메슥거리는 속도, 피곤한 몸도 잘 달래지지 않았다.
최근에 다시 재발한 갑상선이겠거니... 생각하고 약 꼬박 챙겨먹으려 노력했을 뿐.
그러다 문득 그래도 혹시나 싶어, 약국에 갔다왔다.

설마...했던 것이 금새 결과로 나타났다. 10초도 지나지않아 나타난,
두 줄의 선명한 보라색.
눈을 씻고 다시 보았다.
..임신이다.

아니... 이게 아닌데...
내년 초 3~4월경에나 임신을 계획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난, 갑상선 약을 먹고 있었으니 더더욱 당혹스러울 밖에.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시원찮았다.

나의 당황스러워하는 반응에 남편도 기쁘지만 어찌 표현해야할지 모른채
눈치를 보며..ㅋㅋ 나를 꼭 껴안아주고 다른 때보다 손을 자주 잡아주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바쁘다는 그를 굳이 데리고 함께 병원에 갔다.
초음파로 처음 아이를 만났다.
제 딴엔 작아도 생명체라고 심장이 뛰고 있었다.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작지만 분명한 박동...
시큰둥하던 그도 눈이 휘둥그레해져 초음파 화면속으로 뛰어들듯 빤히 쳐다보며 신기해했다.
이미 아이는 4~5주 정도 자라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얘는 자기의 존재 신호를 나에게 계속 보내고 있었다.
모를 때에는 그것이 임신의 징조임을 몰랐던 많은 증상들이, 퍼즐처럼 맞아들어갔다.
자기 몸에 무관심한 여성들을 보며 약간은 한심하게 생각했던 그 행동을 내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산모수첩을 받아들고 뒤늦게 출근했다.

어찌됐던 모든 사람들이 축하해주었다.
특히 친언니의 8년간 불임으로 속을 까맣게 태우고 또 태웠었던 친정엄마는 너무 기뻐하시면서 또 고마워하셨다. (언니는 모든 불임시술이 실패했지만 결국 9년째 자연임신해 지금은 이쁜 조카가 자~알 크고 있다)
4번의 항암치료를 끝내신 엄마는 이제 모든 걱정을 놓으셨다면서 자신의 건강회복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기쁜 숨을 내쉬셨다.


... 아직은 모르겠다.
난 아직 준비가 안되었지만, 생명은 이미 잉태되었다. 
이제 가만히 앉아있어도 내 자신만의 몸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지고, 
내 몸의 조그만 증상도 뭔가 말을 거는 것 같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듯 하다. 

우린 아직은 부모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부모될 준비라는 건, 뭐... 완벽한 준비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런건 가능하지도 않은 말이니까.
다만 각자의 시간을 얼만큼 투자하고 배려하는가에 대한 결심이라고나 할까...

어제오늘의 교훈(?)은,
어쨌든..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되는건 아니라는 거다.
뭐 그렇다고 언제는 계획한대로만 잘된건 아니지만.

이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아직은 내년 상반기만 일을 하고 잠시나마 접어야되게 정해져버린 이 상황이
약간은 억울하지만.
그 억울한 마음이 가시도록 나도 준비하지만,
이미 얼마간의 육아휴직을 나름 결심한 남편 역시 준비시켜야겠다. 

2주후에 만나는 아이는 얼마큼 자라있을까...
근데 정말, 태몽은 누가 꿔준걸까...???
(태몽없는 아이는 무효라며 억울해하던 남편의 모습이 오버랩되는군..ㅋㅋ)

어제, 2008년 10월 13일. 
결혼한지 꼭 1년이 되었다.

30평생 한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과 한 집에서 마음을 맞추고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신기한 일이기도 하고 대단한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임은 당연하고.

우리 둘 모두를 아는 한 언니의 소개와 450일의 연애로 작년 어제 결혼식을 올렸던 우리는
어느덧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결혼1주년을 기념해 일본으로 여행가자고 시작했던 적금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미친듯한 고환율과 경제, 거기에 겹친 가계경제상황에 일본여행은 일치감치 포기했고,
10월엔 내가 일하는 단체 사정으로, 11월중순까진 그가 일하는 단체 사정으로
장거리여행은 11월중순 이후로 일치감치 미뤄놓았다.

어제 저녁.
일을 마친 우리는 광화문의 한 서점에서 만났다. 
그리고 각자 듣고 소장하고 싶은 CD를 골라 서로에게 선물해주었다.

꽃집 아들로서 결혼전에는 아버지 덕택에 꽃바구니를 종종 내게 선물했지만,
자기 돈으로는 사본적이 없는 꽃 한송이를 거금3천원을 들여 사들고 온 그는,
나에게 퓨전국악그룹 <그림(The林)>의 첫번째 앨범 "판프로젝트Ⅱ"를 선물했다.

지난 주말 편지를 써야지 마음먹었지만 드라마 볼 시간 내느라 그 결심을 까먹었던 나는,
그에게 <Jason Mraz>의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를 선물했다.

우리가 함께 맞았던 2008년 새해, 우리는 종로의 한 서점에서 서로에게 책을 선물했었다.
그리고 우리의 첫번째 결혼기념일, 우리는 서로에게 음악을 선물했다.
물론... 어떤 음악들은 mp3로 다운받을 수야 있겠지만,
CD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이젠 흔치 않은 일이 되었고,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은 더 의미있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우린 앞으로 새해에는 책을, 결혼기념일에는 CD를 선물하자고,
우리만의 기념방식을 그렇게 만들기로 했다.

심사숙고끝에 고른 CD를 가지고
사무실 친구가 소개해준 두르가에서 저녁먹기에 앞서
카드 한장에 한면씩 서로에게 줄 글들을 나눠 쓰고 선물을 전달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며 결혼2주년까지 무엇을 할 것인가 함께 얘기했다.
각자가 넣어놓은 각자의 펀드는 알아서 하기로 하고~ㅋㅋ

2세 계획을 얘기했다.
그는 서른 다섯. 적은 나이는 아니므로 처음부터 그는 빨리 아이를 갖자고 했다.
나 역시 적은 나이는 아니며, 아이도 좋아하므로 갖긴 할 것이다.
우리의 애초 계획은 1년 신혼생활 이후 아이를 갖자고 했었다. 

몇달전쯤이었던가.
나는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었다.
아이는 정말 소중한 존재이고 아이를 키움으로써 얻는 행복은 어디에도 비할바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이를 위주로 나의 모든 시간과 삶이 재편되는 것을, 사실 난 원치 않았다.
시간의 재편은 어쩔 수 없으리란 걸 알면서도.
아니, 이미 예상되는 일이므로, 그렇다면 좀 더 미룰 수 없을까 생각했었다.

최근에는 더 넓혀서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간과 삶의 재편이 어찌 나만의 것이랴.
문제는 우리가 부모될 준비가 되었느냐 아니냐라고 생각했다. 나 말고 우리.

그에게 물었다.
부모될 준비가 되었느냐고. 아이는 홀로 크지 않는다고.
우리가 처음부터 부모될 준비를 다 갖추고 아이를 가질 수는 없지만,
내가 말하는 부모될 준비라는 것은 돈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고.
당신의 시간을 내놓을 수 있냐고.
그는 언뜻 지나가듯 "애들은 알아서 잘 크던데.."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잘 알아서 크는 것처럼 보였던 아이들의 육아에 남자들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겠지만, 여자들이 대부분 키웠기에 '잘 알아서 크는 것처럼' 보였을 뿐임을 말해주었다.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을 뿐 아니라, 맡기지 않으려고 하기에
적어도 부모 품에서 온전히 커야할 1년의 시간을 그와 내가 함께 책임져야함을 얘기했다. 
일을 포기하고 아이를 키울 결심을 한다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 둘 다의 몫임을.
6개월의 육아휴직을 서로 엇갈려 가질 결심조차 하지 못한다면
자기 시간의 재편을 기꺼이 다짐하지 못한다면
아이를 가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자기 일을 포기하기 싫은 것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인 것을 되돌려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저녁마다 누가 어린이집에 데리러 갈 것인지 일주일치를 미리 스케줄을 공유하는 일은 그 다음에 가능한 일임을 얘기했다.

물론, 그에겐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 역시 쉽지 않다. 특히 난 혹 이런 충분한 의논과 소통의 시간 없이 나중에 아이와 남편을 원망하며 살아가고 싶진 않다. 그건 나에게도, 그에게도, 아직은 없지만 미래에 생길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모두 안좋은 영향만 끼칠 뿐이기에.

그렇게 짧지만 짧지 않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첫번째 결혼기념일은 이렇게 보냈다.
언젠가는 함께 나눠야지 생각했던 얘기들...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당장 일어날 미래를 고민하고 의논했다.

우리는 아직 아이를 언제 가질 지 확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 결심을, 부모될 준비가 되었을 때 가지기로 했다. 
무심해보이지만 무심하지 않은 남편의 고민하는 모습을 몇달간 더 지켜보게 되리라.
그리고, 그때는 그리 멀지 않으리라.

내년 이맘때, 우리의 결혼2주년은 어떤 모습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아버지가 조기퇴직하시기 직전 7월말 두 분께서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검진에서 당뇨병이던 아버지는 다행히 다른 병이 없으셨지만
어머니는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다.
씁쓸하던 아버지의 조기퇴직이 전화위복이 되던 순간이랄까.

어머니는 곧장 입원하셨고 수술도 잘 받으셨다.
한쪽 가슴을 완전히 절제해냈으니 끝일 것이라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인파선에 일부 전이되었고 항암치료를 4번 해야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1차 항암치료를 받은 이후 2주 가까이 음식을 거의 입에도 대지 못하고 있다던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들으며
경기도와 부산이라는 시공간적 차이가 하염없이 멀리 느껴지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눈물로 애태우다가
지난주 울산으로 출장간 나는 일이 끝나자마자 원래 2달전부터 예정했던 동해도보여행에서 빠져 곧장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마주한 엄마는 수척해진 병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암병동에서 퇴원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퇴원한 다음날 요양병원에 다시 입원한 참이었다.
그리고 낯선 모습이 뭔가 싶어 유심히 보니, 엄마 머리 위에 두건이 씌여있었다.
엄마를 모시고 잠시 외출해 집으로 돌아와서 두건을 들춰보니 
엄마 머리는 정말 몰라보게 빠져있었다.

우리집은 집안 식구들이 모두 엄청난 머리숱을 자랑하는 집안이다.
나도 심히 많은 머리숱 때문에 단발령을 내리던 중고생시절이 괴로웠고
심지어 우리 조카는 태어나자마자 머리가 너무 많아 신생아실 간호사들이 핀을 꽂아줄 정도였다.
그 머리숱의 원조는 물론 우리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의 머리에 풍성하고 짙은 갈색머리가 아니라 허연 살색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항암치료를 하면 그걸 견뎌내는 몸 때문에도 힘들지만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에 가장 힘들어한다고 한다.

엄마의 요청에 따라 하룻밤 집에서 자고 단골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싸고있던 두건을 벗었다. 
미용실 아줌마는 정말 다 깎아낼거냐고 한번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울지말라고, 괜찮다고, 괜찮을거라고 다짐시켰다.
바리깡을 들고 아래에서부터 위로 깎아내기 시작했다.
금새였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만 남은 것은.
너무 순식간이어서 엄마도 나도 눈물흘릴 새도 채 주어지지 않았다.

돈 안받겠다는 미용실 아줌마에게 기어이 돈을 쥐어주시고
나오시는 길에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셨다.
미용실 아줌마도 눈물을 보이고, 나도 함께 울었다.
엄마는 펑펑 울지 않았다. 한두줄기 잠깐 흘렸을 뿐이다.

엄마의 눈물은 무엇에 대한 눈물이었을까.
삶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겠지.
20살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와서 시집살이 있는대로 다하고
온갖 뒷바라지 다했던 시동생들에게 배신당하고 등쳐먹히면서
자신은 먹을 것 하나, 입을 것 하나, 갖고 싶은 것 하나 맘대로 못챙겼던 당신의 삶..
어느 새 돌아보니 병든 몸뚱아리 하나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게 됐고,
그동안의 고생이 암덩어리로 남아 당신의 몸과 마음을 이다지도 괴롭히는 것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으리라.

엄마의 깎여진 머리카락을 보며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어내던 그 때
엄마의 고통과 한, 슬픔도 그렇게 깎여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암치료를 끝내고 나면 반년이 채 되지 않아 다시 머리가 난단다.
그렇게 새로 태어난 머리는 예전 머리랑은 다른 결이란다.

지금은 비록 쓸쓸하고 괴로우실테지만
나중에 새로 날 머리카락처럼
항암치료를 이겨낸 엄마에게 새로운 인생의 후반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래본다.

수목드라마들 때문에 영 심상치 않다.
드라마들을 웬만하면 안보려고 하는데..
그래도 요즘 그다지 확 잡아당기는 드라마는 없었는데...

이거야 원 강마에 때문에 수욜 된게 즐겁다니..
일할려고 싸들고 10시에 맞춰 들어왔는데,
결국 강마에 연기만 줄창 보느라 일 하나도 못했다ㅠㅠ
김명민 연기 잘하는 줄이야 진작에 알았지만 역시...
지휘하는 연기가 어찌나 섹쉬해주시는지~ㅋㅋ
이름이쁜 그녀 정희연(송옥숙)의 솔로연기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강마에의 시향 지휘 선언에 이거 좀 시시한데~ 생각했었는데, 오디션 반전 괜찮았다.

근데 사실 베토벤 바이러스는 크게 보면 줄거리는 별거 없을 것 같다.
물론 홍자매 브랜드에 맞게 그녀들의 독특한 시나리오 매력이 있을거라는 기대는 있다. 갠적으로 홍자매 무지 좋아한다.

바람의 화원은 결국 강마에 때문에 뒤 10분 밖에 못봤다.
어설픈 예고편 때문에 별로 볼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이거 또 장난이 아닐 듯 하다.
소설이 원작이니 얘기 풀어가는게 보통은 아닐 것이고,
캐릭들도 만만치 않을 듯...
나도 모르게 어느새 예고편 다시 찾아보고 있는...츄릅~~^^;

아~~ 드라마의 세계에 나는 또 다시 빠져들고 마는 것인가...
나는 M본부를 닥본사해야하나, S본부를 닥본사해야하나ㅋㅋㅋ

[펌]<여성계 성명서>

이명박 정부는 유모차 부대를 비롯한 촛불시민에 대한 표적수사를 중단하고 어청수 경찰청장을 즉각 해임하라



이명박 정부와 어청수 경찰청장의 촛불 시민 탄압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던 시민들에게 사전 통보와 영장도 없이 불법적으로 집 앞에 찾아와 강압적 협박을 일삼으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또한, 인터넷 커뮤니티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에 선거법 위반 혐의(서울시 교육감 선거 관련)로 출두명령을 내리는 등 공권력을 행사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 여성단체들은 이명박 정부와 어청수 경찰청장의 공권력 남용 행위를 강력히 비판하며 유모차 부대를 비롯한 촛불시민에 대한 표적수사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유모차 부대를 비롯한 촛불 시민들은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유모차 부대는 ‘내 아이의 옹알이에 눈맞추고 즐거워하던 엄마들이 왜 지방에서 힘들게 아이들 기저귀가방까지 들춰메고 서울까지 와야만 했는지’ 되묻고 있다.
이들에게 ‘일반교통방해’, ‘공무집행방해’라는 말도 안 되는 법명을 들먹이는 이명박 정부와 어청수 경찰청장의 행동에 온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집회시위의 자유’는 민주사회에서 보장된 시민의 권리이다.
이런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국가는 스스로 경찰국가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평화롭던 촛불시위에 폭력을 행사하고 명박산성을 쌓아 교통흐름을 방해한 것은 이명박
정부임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최근 유모차 부대에게 ‘아동학대’ 운운하는 한나라당과 경찰청은 각성해야한다.
아기가 탄 유모차에 소화기와 물대포를 발사한 것과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고 유통하여 아동들에게 먹이는 것이야 말로 아동학대가 아닌지 스스로 되물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유모차를 시위수단, 물대포 방패막이로 동원했다는 더 이상 유모차 부대를 모욕하는 패륜적 선전을 중단해야 한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에게 유모차 부대를 비롯한 촛불 시민들에 대한 보복성 표적수사를 즉각 중단하고 어청수 경찰청장을 즉각 해임할 것을 촉구한다.


2008년 9월 24일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의전화연합

방금 퇴근하여 인터넷을 켜자마자
또 어처구니없는 뉴스 하나를 접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이범래의원이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위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데 대해 아동학대혐의를 적용해야한다"는 말을 했다더군요.
여기에 어청수 경찰청장은 "적용 여부를 검토해보겠다"고 응답했다네요.

정말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옵니다.
유모차부대 어머니들에 대해 어떻게든 탄압해보려고 아주 난립니다.

저, 오늘 오전에(아니,글을 쓰는 도중에 어제가 됐군요) 유모차부대 기자회견 갔다왔습니다.
비록 아이가 아직 없어 유모차부대 카페회원은 아니지만,
유모차부대를 지지하고 함께하기 위해 참석했습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20분전에 도착했는데,
서울지방경찰청앞은 기자회견하러 온 사람보다 경찰이 몇배는 많더군요.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이 지나다니기도 힘들게 인도를 떡하기 가로막더니
기자회견 막 시작하자마자 여경들을 한쪽에 배치하더군요. 방패든 경찰들과 함께요. 
연행할 것 같이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더니
기자들이 40명도 넘게 와글거리며 속속 모여들고 시민들도 많이 오니까
언제 그랬냐는듯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더군요.

유모차부대 어머니들의 기자회견을 보는내내 너무나도 가슴아팠습니다.
그녀들에 대한 탄압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경찰은, 가족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그녀들의 특성을 악용하여
남편의 직장, 직급 등을 운운하며 협박했다 합니다. 
기자회견에서 유모차부대 한 여성이 흘린 눈물은 그녀만이 흘린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자식걱정, 사회걱정 하는 것도 불법이라니요!
국민 말 안듣고 자기들 맘대로 하려니까 유모차마저도 무섭게 느껴지나보지요.

엄마탄압에 대해 여론이 들끓으니
서울지경은 기껏 한다는 일이 브리핑자료를 또 내서
유모차부대 엄마들은 단순한 네티즌이 아니라 폭력시위 적극 가담자이자 선동자였다고 하는군요.
유모차부대 엄마들은 카페회원이건 아니건간에 모두 정당한 행위를 했으며, 정말 아이들이 먹거리 걱정 없이, 교육걱정없이 행복한 세상에서 살아가길 간절히 원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행동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유모차부대의 행렬을 보고 감동했고, 또 반성했으며, 박수를 보냈습니까?!!
정말 이 나라의 경찰이 유모차 아가들의 발톱의 때만큼도 못한 존재라는 사실에 다시금 분통을 터트립니다. 정말 갈수록 수준이 점점 지하 몇 백미터로 떨어지는데.. 정말 눈뜨고 보기 차마 민망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오늘 국회 회의장에서는 "아동학대"니 뭐니하는, 그 따위 망발들이 오갔다니 정말이지, 누가누가 최고저질인지 경쟁이라도 하는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어진 그 곳에서 국민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자들이 고름만도 못한 얘기들을 지껄이다니요!
유모차를 동원했다고 떠들더니, 이제는 아동학대랍니다!
그럼, 아이들 맡아줄 곳도 없는데 엄마들이 아이들을 집이든 어디든 방치하고 그냥 나왔어야 아동보호입니까?! 아동보호의 기준이 참으로 얼척없으십니다 그려.
진정한 아동학대는 우리 아이들 제대로 된 먹거리 맘놓고 먹지 못하게 만든 정권이 하고 있는거 아닙니까?!

딴나라당 의원들, 그리고 견찰들이 국민과의 소통을 소똥으로 여기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이건 뭐... 보기만 해도 구역질 나올 거 같습니다.
이범래, 그리고 어청수!
그들의 죄목에 아동학대 뿐만 아니라 국민학대까지 추가해야할 듯 싶습니다.
뭐, 워낙에 붙어있었던 죄목이 많긴 하지만...
다음달이면 결혼 1주년이 되니 아직은 신혼.
결혼한 이후 2번의 명절을 보냈다.

명절은 나에게 무척이나 불편한 시간이다.
왜?! 명절에 내가 30여년동안 나고 자란 가족들이 아닌
이제 알게된지 3년도 채 되지 않는 가족들과 보내야한단 말인가?!

물론 연휴기간에 시집도 가고 친정도 당연히 갔다.
하지만 명절 당일 아침에는 시댁에서 차례를 지냈다.
나 뿐만 아닌거 알고 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남자쪽 집안에서 명절을 지내니까.

당연한거 아니냐고?
상당한 시간동안 그래왔다는 이유로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될 수는 없다.
동등한 인격체가 만나 결혼을 했고, 명절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가족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리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가족'은 '남자쪽 가족'만, '조상'도 '남자쪽 조상'만 해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에 끊을래야 끊기 어려운 악순환과 딜레마가 있다.
남편은 1명의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은 이미 결혼을 했고, 명절마다 그녀의 시집에 간다.
고로, 남편네 집에서 부모님과 명절을 지낼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
나는 언니와 오빠가 1명씩 있다.
둘 다 결혼을 했고, 언니 역시 명절마다 그녀의 시집에 간다.
오빠는 나의 친정에서 명절을 우리 부모님과 함께 지낸다.
즉, 명절기간 나의 시집에는 남편이 남고, 나의 친정에는 오빠가 남으므로
결국 남편네 집에 가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이 이유가 되지만, 결국 이런 이유로 결혼한 딸은(특히 남편이 외동아들인 경우에는 더더욱) 당췌 친정에서 명절 아침을 지내는 선택을 하기란 하늘에 별따기가 된다.
모진 년이 되지 않는 이상, 이런 주장('친정에서 명절을')을 하기 어려워지는거다.

나는 결혼하고 명절을 맞으면서 이런 얘기를 남편에게 했다.
명절아침을 시집에서 보내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하지만, 내가 명절을 두고 이런 의문과 불만이 항상 끊임없이 드는 것과는 달리,
남편은 아무래도 자기집이다보니 순간순간 당연한 것으로 느낄 때가 많아 보인다, 아직은.

그래서 다음 명절에는 어느 집에 가서 차례를 지낼지 의논하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는 말도, 싫다는 말도.
아마도 그는 한편으로는 갈등하고 있으리라. 이성적으로 내 요구가 틀린 것이 아니지만, 관습과 상황상 그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단 당장 닥친 문제는 아니니까 그때 가서 다시 고민해보거나 (나를) 설득해봐야지 생각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누군가 다부지게 맘 먹고 깨지 않는 한,
쉽게 바뀌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부모님이 좀 쓸쓸한 명절 아침을 맞는다 하더라도,
사실 그건, 딸만 가진 부모들은 다 맞고 있는 명절 아침인거다.
시부모님이 다른 친척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고민되신다 하더라도,
그런 시선 때문에 바꾸고 개선해야할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는거다. 

다음 명절에는 좀 모진 년이 돼야겠다.
당연한 듯 보이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 일에 대해
변화를 얘기하지만 잘 변화되지 않는,
갇힌 웅덩이에 물꼬를 좀 터야겠다.
참,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책이라고해야 이론서들만 깔짝였었는데..

얼마전 한번씩 책지름신이 강림해주시는 울짝꿍이 책을 여러권 사왔다.
그 중에 내 눈에 띈 책,
우락부락하고 원색적인 일러스트로 장식된 책의 이름은 <남쪽으로 튀어!>

뭐.. 소설쯤 읽어주는거도 괜찮겠다 싶어
책주인의 구박을 받으며 내가 먼저 개봉했다.
그런데..헉! 개봉과 동시에 광속도로 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옛 일본 과격파 운동권 출신의 "세금따윈 낼수없어!" "국민의 의무를 강요하는거라면 난 국민이길 포기하겠다"고 옆집앞집시선따윈 전혀 개의치않고 밤낮으로 큰소리를 빽빽대는 아빠 이치로,
겉으론 보통의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과거를 가지고 있는 엄마 사쿠라,
평범한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짖지만 결코 그 꿈이 이뤄지기엔 쉽지 않아보이는, 뭔일이든 걱정이 앞서는 열두살 짜리 지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온갖가지 일화들과 관계들...

오쿠다 히데오는 어느 인터뷰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이 그때의 시선으로 계속 순수하게 살아간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며 우에하라 이치로를 그렸다고 했다.

소설 속의 우에하라 이치로는 관을 적으로 여기고, 누군가 얘기할라치면 논리를 전개해보라 윽박지르고, 자식들에게도 설명보다는 자기가 정한 원칙만을 들이대기도 하고, 타협과 배려보다는 냉소와 자기주장만 너무 꼿꼿이 내세우곤 한다.

아마 이런 모습은 일본의 옛 과격하고 경직됐던 운동권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지 않을까,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이건 일본 운동권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작가가 원했던 '순수'의 모습은 소설 전체에, 그리고 특히 후반부에 그들이 자신만의 이상향을 찾아 떠난 그 곳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도시 아닌데서 산다는건 생각도 못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상당히 좋아. 아마 아침 일찍 일어나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게 인간의 본질인가 봐.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하는 것들이 있어...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앟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 중 한사람이야..

작가가 이치로의 입을 통해 비판하고 있는
국가주의,전체주의 교육의 억압, 시민운동의 문제과 한계, 자본의 착취 같은 것을 굳이 함께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한 구절로서도 나는 어느새 허점투성이 우에하라 집안 전체를 응원하고 있는 이유로 충분해졌다. 

끝까지 저항해야 서서히 변한다는, 그 변화는 어느 누구도 대신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이 구절을 읽으며 이건...
지난 몇달간 들었던 수백만개의 촛불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촛불의 홍수가 지나간 뒤 더 퍽퍽해진 이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있는 일상의 촛불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하는.


나를 자신의 문장세계에 한 열흘을 푹 잠기게 만들었던
그래서 그의 소설 4개를 줄줄이 읽게 만들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꼭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남쪽으로 튀어 1 상세보기


* 덧붙여, 내가 읽었던 나머지 책들,
<공중그네>, <인더풀>, <면장선거> 모두 인상깊고 재미있었지만
이왕이면 공중그네만 읽는게 나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소설에서도 속편은 점점 재기가 빛을 잃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