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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생각의 찌끄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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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에 해당되는 글 1

  1. 2008.10.05 암투병하시는 어머니 머리 완전히 깎아내던 날... 1

아버지가 조기퇴직하시기 직전 7월말 두 분께서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검진에서 당뇨병이던 아버지는 다행히 다른 병이 없으셨지만
어머니는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다.
씁쓸하던 아버지의 조기퇴직이 전화위복이 되던 순간이랄까.

어머니는 곧장 입원하셨고 수술도 잘 받으셨다.
한쪽 가슴을 완전히 절제해냈으니 끝일 것이라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인파선에 일부 전이되었고 항암치료를 4번 해야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1차 항암치료를 받은 이후 2주 가까이 음식을 거의 입에도 대지 못하고 있다던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들으며
경기도와 부산이라는 시공간적 차이가 하염없이 멀리 느껴지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눈물로 애태우다가
지난주 울산으로 출장간 나는 일이 끝나자마자 원래 2달전부터 예정했던 동해도보여행에서 빠져 곧장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마주한 엄마는 수척해진 병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암병동에서 퇴원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퇴원한 다음날 요양병원에 다시 입원한 참이었다.
그리고 낯선 모습이 뭔가 싶어 유심히 보니, 엄마 머리 위에 두건이 씌여있었다.
엄마를 모시고 잠시 외출해 집으로 돌아와서 두건을 들춰보니 
엄마 머리는 정말 몰라보게 빠져있었다.

우리집은 집안 식구들이 모두 엄청난 머리숱을 자랑하는 집안이다.
나도 심히 많은 머리숱 때문에 단발령을 내리던 중고생시절이 괴로웠고
심지어 우리 조카는 태어나자마자 머리가 너무 많아 신생아실 간호사들이 핀을 꽂아줄 정도였다.
그 머리숱의 원조는 물론 우리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의 머리에 풍성하고 짙은 갈색머리가 아니라 허연 살색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항암치료를 하면 그걸 견뎌내는 몸 때문에도 힘들지만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에 가장 힘들어한다고 한다.

엄마의 요청에 따라 하룻밤 집에서 자고 단골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싸고있던 두건을 벗었다. 
미용실 아줌마는 정말 다 깎아낼거냐고 한번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울지말라고, 괜찮다고, 괜찮을거라고 다짐시켰다.
바리깡을 들고 아래에서부터 위로 깎아내기 시작했다.
금새였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만 남은 것은.
너무 순식간이어서 엄마도 나도 눈물흘릴 새도 채 주어지지 않았다.

돈 안받겠다는 미용실 아줌마에게 기어이 돈을 쥐어주시고
나오시는 길에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셨다.
미용실 아줌마도 눈물을 보이고, 나도 함께 울었다.
엄마는 펑펑 울지 않았다. 한두줄기 잠깐 흘렸을 뿐이다.

엄마의 눈물은 무엇에 대한 눈물이었을까.
삶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겠지.
20살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와서 시집살이 있는대로 다하고
온갖 뒷바라지 다했던 시동생들에게 배신당하고 등쳐먹히면서
자신은 먹을 것 하나, 입을 것 하나, 갖고 싶은 것 하나 맘대로 못챙겼던 당신의 삶..
어느 새 돌아보니 병든 몸뚱아리 하나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게 됐고,
그동안의 고생이 암덩어리로 남아 당신의 몸과 마음을 이다지도 괴롭히는 것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으리라.

엄마의 깎여진 머리카락을 보며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어내던 그 때
엄마의 고통과 한, 슬픔도 그렇게 깎여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암치료를 끝내고 나면 반년이 채 되지 않아 다시 머리가 난단다.
그렇게 새로 태어난 머리는 예전 머리랑은 다른 결이란다.

지금은 비록 쓸쓸하고 괴로우실테지만
나중에 새로 날 머리카락처럼
항암치료를 이겨낸 엄마에게 새로운 인생의 후반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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