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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윈슬렛'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3.18 영화"더 리더"..절제한듯 최대한의 깊이를 보여주는 영화! 2

"더 리더(The Reader) : 책 읽어주는 남자"

제목만 겨우 알고 우연한 기회에 가게 된 시사회.
기껏해야 케이트 윈슬렛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라는 점, 그리고 나이든 여자와 어린 남자의 사랑 정도로만 알고 갔다.

영화 초반을 장식하는 배우들의 파격적이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한 노출.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건 뭔가...보통의 헐리웃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걸?!

영화 중반 이후부터 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헐리웃 영화 중에 내가 이렇게 눈물흘린 적이 있던가? 그녀와 그가 만들어내는 눈물은 결코 극적이지 않았고, 그러므로 억지스럽지 않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최근 몇달간 내가 본 영화 중 단연 최고였다. 
글쎄...극적인 멜로영화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좋은 선택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자신의 모든 생애와도 맞바꿀 수밖에 없었던 비밀과 자존심, 죄책감을
이 영화는 영화 상으로 가능한 한 최대한을 표현해주고 있다.

벤자민버튼의 브래드 피트도 나를 놀랍게 했지만,
더 리더의 케이트 윈슬렛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이 상이 영화선택의 판단기준을 제공해주지는 못하지만..)이 결코 아깝지 않다는 것,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더 깊어진 배우를 만난 즐거움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그리고 데이빗 크로스라고 했던가.. 남자주인공의 10~20대를 연기한 남자배우의 발견 또한 소중하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제 소감을 여지없이 적으려다보니..;; 영화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영화 보신 후에 다시 들러주세요~ *



무기징역을 선고받을지언정,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던 그녀.
그녀에게 자신의 사적 비밀, 혹은 컴플렉스를 드러낸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의 남은 모든 생애와도 맞바꿀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외근직에서 사무직으로의 승진은
그녀 자신이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었기에,
그녀가 새로 찾게된 인생의 기쁨과 사랑, 터전마저 모두 포기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승진을 포기하고, 삶의 터전을 옮기고, 나치 친위대로서 자기를 망치는 길은,
그녀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지키고 싶었던 최후의 보루-그것이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내면이 세상과 맞닿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그녀 자신이 다른 세상과 타인과의 관계 맺는 시작이었을 수도 있겠지.
또는...
그녀의 온몸으로 똘똘 뭉쳐져있는 컴플렉스로부터의 일시적인 탈출과
새로운 자신, 혹은 자신과 세상의 새로운 만남을 향한 기대와 희망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가 책을 읽어준 그 순간은,
그래서 그녀에겐 새로운 인생이었으리라.
인생의 전부...
몇십년만에 교도소에서 만난 마이클이 한나에게 "옛날일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마이클은 친위대로서 만행에 가담했던 그녀의 "옛날"을 묻지만,
한나는 그와 그녀가 함께했던, 즉 그가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그 "옛날"을 말한다.
그것이 그녀에겐 인생이었기에, 단순히 옛날일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ing이리라.
그러므로 그의 녹음테이프를 통해 다시 되살아나는 자기 인생의 절정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컴플렉스에 직면하는 도전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녀는 그런 자신의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기에
자신의 컴플렉스로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막 빠져 나와 바깥으로 걸어가려하던 그녀에게
마지막의 선택은 어쩌면 최선이었을 것도 같다. 

이 영화는 표현의 방식과 수위조절이 너무나도 훌륭하다.
제일 돋보이는 것은,
그가 그녀에게 "나는 당신이 문맹인 것을 알았다(알고있다)"는 식의 화법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끝까지 개인적 비밀을 숨김으로써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고 인정해준 사람, 이것이 바로 The Reader이다.
그가 리더(reader)로서 책을 녹음해줄 때, 그리고 그녀가 그 책을 들을 때
그것만으로도 삶의 여정과 깊이가 드러나고 표현되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고 감동이 따라온다.

그가 책을 녹음하고,
그녀가 녹음된 책을 듣고,
녹음된 책을 듣고 듣고 또 듣다가
단 한번도 자신의 손에 들어보지 않았던 책을 스스로 찾게 되고,
그러다 단 두 줄의 짧지만 긴 편지를 쓰게 되는 그 과정들...
선에 불과하던 싸인이 정확한 자기 이름으로 변하는 순간들...
그 변화의 흐름이 적절히 절제되면서도 아낌없이 표현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소소한 다른 것들도 함께 생각해볼만하다.
나치의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 심판하는 자들과 심판받는 자들이 남았다. 
영화를 보면서 침묵하거나 방관함으로써 동조했던 다수의 독일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을 악용하여 그녀를 주동자로 모는 심판받는 자들 속에서
"임무", "직업"으로서 가담했음을 있는 그대로 덤덤하게 털어놓는 한나는
오히려 무식하고 순진해보이기까지 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사실 나는 과연 심판하는 자들은 그렇게 떳떳하기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재판하는 씬과 마지막 생존자 가족을 만나는 씬에서 감독은 이를데없이 현명하다.
감독은 그녀는 선하거나 억울한 희생양로 만들지도,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진부하지만 진심을 알 수 없는 모습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유태인 생존자와 가족들도 덤덤하게 그려낸다.
이 시점에서 역사적 정의만을, 혹은 사적인 진실과 그 고통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감정적으로 그렸다면 이 영화는 이렇게 빛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서도 한동안 자막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뒤늦게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출구 앞에 붙어져있는 포스터를 보고,
이 영화의 감독이 디 아워스와 빌리 엘리어트의 감독임을 알았다.
어쩐지 섬세한 연출이라 했다.

다만, 한국어판 포스터에 적힌 문구는 이 영화를 확 깎아먹었다.
"사랑을 말하지 못한 남자, 그 사랑을 믿지 않았던 여자" 라니...
"3월, 한 남자의 일생을 뒤흔든 사랑이 시작됩니다"라니...
사랑얘기라고 해야 먹힌다고 생각해서일까..
영화의 핵심내용에서 꽤나 비켜간 홍보사의 초점이 몹시 아쉬웠다.

이렇게 스포일러를 왕창 뿌렸지만, 
이 글만 보고 영화를 알았다고 생각하지는 말시길..!
안타깝게도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할 것 같긴 하지만,
꼭 한번 봐야할 영화로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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