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내 마음과 생각의 찌끄레기들~
조이~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새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한,
기쁘면서도 오묘한,
그 무엇...

요즘 몸이 안좋았다.
열흘새 창원에 2번, 부산에 1번.. 승용차와 기차로 장시간 이동한 것만 30시간 남짓.
게다가 한 프로젝트 정리하고 또 다른 프로젝트 신청하느라 이틀을 새벽4시에 일어났다.
그토록 무리했으니 몸이 안좋을밖에. 

결국 어제는 출근하자마자 휴가원을 던지듯 내고 퇴근해버렸다.
집에 와서 3시간을 내리자고 일어나 밥을 먹었지만, 메슥거리는 속도, 피곤한 몸도 잘 달래지지 않았다.
최근에 다시 재발한 갑상선이겠거니... 생각하고 약 꼬박 챙겨먹으려 노력했을 뿐.
그러다 문득 그래도 혹시나 싶어, 약국에 갔다왔다.

설마...했던 것이 금새 결과로 나타났다. 10초도 지나지않아 나타난,
두 줄의 선명한 보라색.
눈을 씻고 다시 보았다.
..임신이다.

아니... 이게 아닌데...
내년 초 3~4월경에나 임신을 계획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난, 갑상선 약을 먹고 있었으니 더더욱 당혹스러울 밖에.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시원찮았다.

나의 당황스러워하는 반응에 남편도 기쁘지만 어찌 표현해야할지 모른채
눈치를 보며..ㅋㅋ 나를 꼭 껴안아주고 다른 때보다 손을 자주 잡아주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바쁘다는 그를 굳이 데리고 함께 병원에 갔다.
초음파로 처음 아이를 만났다.
제 딴엔 작아도 생명체라고 심장이 뛰고 있었다.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작지만 분명한 박동...
시큰둥하던 그도 눈이 휘둥그레해져 초음파 화면속으로 뛰어들듯 빤히 쳐다보며 신기해했다.
이미 아이는 4~5주 정도 자라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얘는 자기의 존재 신호를 나에게 계속 보내고 있었다.
모를 때에는 그것이 임신의 징조임을 몰랐던 많은 증상들이, 퍼즐처럼 맞아들어갔다.
자기 몸에 무관심한 여성들을 보며 약간은 한심하게 생각했던 그 행동을 내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산모수첩을 받아들고 뒤늦게 출근했다.

어찌됐던 모든 사람들이 축하해주었다.
특히 친언니의 8년간 불임으로 속을 까맣게 태우고 또 태웠었던 친정엄마는 너무 기뻐하시면서 또 고마워하셨다. (언니는 모든 불임시술이 실패했지만 결국 9년째 자연임신해 지금은 이쁜 조카가 자~알 크고 있다)
4번의 항암치료를 끝내신 엄마는 이제 모든 걱정을 놓으셨다면서 자신의 건강회복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기쁜 숨을 내쉬셨다.


... 아직은 모르겠다.
난 아직 준비가 안되었지만, 생명은 이미 잉태되었다. 
이제 가만히 앉아있어도 내 자신만의 몸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지고, 
내 몸의 조그만 증상도 뭔가 말을 거는 것 같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듯 하다. 

우린 아직은 부모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부모될 준비라는 건, 뭐... 완벽한 준비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런건 가능하지도 않은 말이니까.
다만 각자의 시간을 얼만큼 투자하고 배려하는가에 대한 결심이라고나 할까...

어제오늘의 교훈(?)은,
어쨌든..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되는건 아니라는 거다.
뭐 그렇다고 언제는 계획한대로만 잘된건 아니지만.

이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아직은 내년 상반기만 일을 하고 잠시나마 접어야되게 정해져버린 이 상황이
약간은 억울하지만.
그 억울한 마음이 가시도록 나도 준비하지만,
이미 얼마간의 육아휴직을 나름 결심한 남편 역시 준비시켜야겠다. 

2주후에 만나는 아이는 얼마큼 자라있을까...
근데 정말, 태몽은 누가 꿔준걸까...???
(태몽없는 아이는 무효라며 억울해하던 남편의 모습이 오버랩되는군..ㅋㅋ)

어제, 2008년 10월 13일. 
결혼한지 꼭 1년이 되었다.

30평생 한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과 한 집에서 마음을 맞추고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신기한 일이기도 하고 대단한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임은 당연하고.

우리 둘 모두를 아는 한 언니의 소개와 450일의 연애로 작년 어제 결혼식을 올렸던 우리는
어느덧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결혼1주년을 기념해 일본으로 여행가자고 시작했던 적금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미친듯한 고환율과 경제, 거기에 겹친 가계경제상황에 일본여행은 일치감치 포기했고,
10월엔 내가 일하는 단체 사정으로, 11월중순까진 그가 일하는 단체 사정으로
장거리여행은 11월중순 이후로 일치감치 미뤄놓았다.

어제 저녁.
일을 마친 우리는 광화문의 한 서점에서 만났다. 
그리고 각자 듣고 소장하고 싶은 CD를 골라 서로에게 선물해주었다.

꽃집 아들로서 결혼전에는 아버지 덕택에 꽃바구니를 종종 내게 선물했지만,
자기 돈으로는 사본적이 없는 꽃 한송이를 거금3천원을 들여 사들고 온 그는,
나에게 퓨전국악그룹 <그림(The林)>의 첫번째 앨범 "판프로젝트Ⅱ"를 선물했다.

지난 주말 편지를 써야지 마음먹었지만 드라마 볼 시간 내느라 그 결심을 까먹었던 나는,
그에게 <Jason Mraz>의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를 선물했다.

우리가 함께 맞았던 2008년 새해, 우리는 종로의 한 서점에서 서로에게 책을 선물했었다.
그리고 우리의 첫번째 결혼기념일, 우리는 서로에게 음악을 선물했다.
물론... 어떤 음악들은 mp3로 다운받을 수야 있겠지만,
CD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이젠 흔치 않은 일이 되었고,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은 더 의미있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우린 앞으로 새해에는 책을, 결혼기념일에는 CD를 선물하자고,
우리만의 기념방식을 그렇게 만들기로 했다.

심사숙고끝에 고른 CD를 가지고
사무실 친구가 소개해준 두르가에서 저녁먹기에 앞서
카드 한장에 한면씩 서로에게 줄 글들을 나눠 쓰고 선물을 전달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며 결혼2주년까지 무엇을 할 것인가 함께 얘기했다.
각자가 넣어놓은 각자의 펀드는 알아서 하기로 하고~ㅋㅋ

2세 계획을 얘기했다.
그는 서른 다섯. 적은 나이는 아니므로 처음부터 그는 빨리 아이를 갖자고 했다.
나 역시 적은 나이는 아니며, 아이도 좋아하므로 갖긴 할 것이다.
우리의 애초 계획은 1년 신혼생활 이후 아이를 갖자고 했었다. 

몇달전쯤이었던가.
나는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었다.
아이는 정말 소중한 존재이고 아이를 키움으로써 얻는 행복은 어디에도 비할바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이를 위주로 나의 모든 시간과 삶이 재편되는 것을, 사실 난 원치 않았다.
시간의 재편은 어쩔 수 없으리란 걸 알면서도.
아니, 이미 예상되는 일이므로, 그렇다면 좀 더 미룰 수 없을까 생각했었다.

최근에는 더 넓혀서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간과 삶의 재편이 어찌 나만의 것이랴.
문제는 우리가 부모될 준비가 되었느냐 아니냐라고 생각했다. 나 말고 우리.

그에게 물었다.
부모될 준비가 되었느냐고. 아이는 홀로 크지 않는다고.
우리가 처음부터 부모될 준비를 다 갖추고 아이를 가질 수는 없지만,
내가 말하는 부모될 준비라는 것은 돈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고.
당신의 시간을 내놓을 수 있냐고.
그는 언뜻 지나가듯 "애들은 알아서 잘 크던데.."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잘 알아서 크는 것처럼 보였던 아이들의 육아에 남자들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겠지만, 여자들이 대부분 키웠기에 '잘 알아서 크는 것처럼' 보였을 뿐임을 말해주었다.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을 뿐 아니라, 맡기지 않으려고 하기에
적어도 부모 품에서 온전히 커야할 1년의 시간을 그와 내가 함께 책임져야함을 얘기했다. 
일을 포기하고 아이를 키울 결심을 한다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 둘 다의 몫임을.
6개월의 육아휴직을 서로 엇갈려 가질 결심조차 하지 못한다면
자기 시간의 재편을 기꺼이 다짐하지 못한다면
아이를 가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자기 일을 포기하기 싫은 것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인 것을 되돌려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저녁마다 누가 어린이집에 데리러 갈 것인지 일주일치를 미리 스케줄을 공유하는 일은 그 다음에 가능한 일임을 얘기했다.

물론, 그에겐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 역시 쉽지 않다. 특히 난 혹 이런 충분한 의논과 소통의 시간 없이 나중에 아이와 남편을 원망하며 살아가고 싶진 않다. 그건 나에게도, 그에게도, 아직은 없지만 미래에 생길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모두 안좋은 영향만 끼칠 뿐이기에.

그렇게 짧지만 짧지 않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첫번째 결혼기념일은 이렇게 보냈다.
언젠가는 함께 나눠야지 생각했던 얘기들...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당장 일어날 미래를 고민하고 의논했다.

우리는 아직 아이를 언제 가질 지 확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 결심을, 부모될 준비가 되었을 때 가지기로 했다. 
무심해보이지만 무심하지 않은 남편의 고민하는 모습을 몇달간 더 지켜보게 되리라.
그리고, 그때는 그리 멀지 않으리라.

내년 이맘때, 우리의 결혼2주년은 어떤 모습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