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세상이 멈추었던 그때 이후.
블로그를 다시 시작해보자 먹었던 마음 같은건 꺼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이야기나누고싶은 그림책들도 간간이 있었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어찌 꺼낼 수 있었겠나...
그리고는 어느덧 시간이 흘러가고, 또 일상이 찾아왔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이젠 나도 정신을 차리고 나의 일상을 다듬고 걸음을 내딛어야지...
어떤 그림책으로 다시 시작해볼까...
그래, 이건 어떨까.
『똥떡』(이춘희 글, 박지훈 그림, 2011, 사파리)
"끄~응
똥아, 똥아, 느림보 똥아!
빨리빨리 나와라."
옛날 시골집 뒷간에 앉아 똥을 누는 준호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그림책은, 이야기도, 그림도 술술 잘 읽혀지는 옛날이야기같은 느낌이다.
똥통에 빠진 준호를 씻겨주는 엄마에게 할머니가 말한다.
"똥통에 빠진 아이는 일찍 죽는다는데..."
그 말을 듣고선 할머니와 엄마는 쌀을 불리고 팥을 삶아 정성스럽게 액막이 떡을 빚는다.
빚은 떡을 뒷간 앞에 두고는 뒷간귀신에게 제를 지내는데,
홀연히 나타난 뒷간귀신 앞에서 준호는 벌벌 떨면서도 저를 살려달라, 곧잘 빈다.
나이만큼 똥떡을 먹고난 준호에게 동네사람들에게 '똥떡~똥떡~' 소리치며 나눠주러 가고,
동네사람들은 "준호가 복떡을 가져왔구나"하며 반긴다.
『똥떡』은 그 이야기 자체로 재미있다.
뒷간귀신이 무서울법도 하지만, 다섯살 딸래미는 의외로 그리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준호가 "뒷간 귀신님, 똥떡 드셨으니... 저 좀... 살..려..주세요"하며 비는 장면에서
감정이입해 같이 빌기도 하고,
똥떡~똥떡~하며 동네사람들에게 나눠줄 때에는 저도 같이 신나게 외친다.
어린 시절, 부실한 널판지 가운데 사각구멍이 항상 나를 불안하게 했던 시골할머니댁 푸세식변소에 가본적은 있지만,
똥떡이란건 이 그림책으로 처음 알게 됐다.
그래서 친정엄마께 여쭤봤더니,
그 없던 시절에도 동네에서 아이가 똥통에 빠지면 떡을 만들어 제를 지내고 나눠먹는 일을 했단다.
좀 궁금해졌다. 왜 굳이 똥떡을 만들어서 나눠먹었을까?
검색하다 아래의 글을 보고 아~ 그렇구나, 생각이 들었다.
(cf. 자세한 내용은 여기 ===> "똥떡을 아시나요?" http://blog.daum.net/sjh9535/285)
어린아이가 똥통에 빠지면 놀라고 수치스럽고 공포스러워서
변소가는 일에 대해 커다란 두려움을 갖게 되면서 변소갈 때마다 트라우마가 증폭된다.
이때, 똥떡을 정성스레 만들어 제를 올리고 아이가 동네에 나눠주게 되면,
없던 시절에 간식거리를 받아든 이웃들은 아이에게 덕담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면서,
똥통에 빠진 황당한 경험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극복하게 되고, 다음날 다시 변소에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똥떡이 변소에 빠진 아이의 불안, 수치, 공포를 치유하는
놀라운 트라우마 치료 메커니즘 이었던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자신이 경험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없었던 일로 애써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마주보게 하는 것이라며.
충분히 납득되는 해석이다.
옛날 사람들의 미신이 알고보면 생활의 다양한 지혜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똥떡도 충분히 그런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어릴 때 나를 잡아먹을듯하던 똥통을 내려다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 트라우마도 이해되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도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살면서 누구나 인생의 고비를 겪게 되지만,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기도 하고 극복되기도 한다.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트라우마는 전혀 예상치못하는 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때, 더 크고 무겁게 나를 괴롭혔다.
그 경험, 그 순간을 나의 트라우마라고 인정하기 쉽지 않았지만,
또 인정한 때로부터 짧지않은 시간동안 파도처럼 나를 덮쳤지만,
그 괴로웠던 순간을 피하지않고 마주보면서 계속 소리냈었다.
반복된 몸부림 후, 어느 순간 마음 속의 태풍이 잦아들었다.
...그래, 그러고보니 그런 때가 있었네.
어느새 지나간 일이 되고 아무렇지 않게 꺼내놓을 수도 있게 되는거지.
지금 갑갑한 마음도 "똥떡~똥떡~" 하다보면 언젠간 괜찮아지겠지...?!